피로사회
한병철 저 /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역자의 말에 의하면 이 책은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를 번역한 것이라 한다. 저자의 제안에 따라 "피로사회"에 개진된 생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강연원고 '우울사회'도 번역되어 덧붙여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어떤 경로로 피로사회에 대한 책소개를 읽었는지 모르지만 호기심이 동하여 구입은 했는데 막상 읽다보니 "피로사회" 때문에 피로해졌다. 하하. 속으로 '맞아맞아'를 연발하며 공감할 때도 많았지만 더 많은 부분 읽기 어려웠다. 어려운 부분은 읽다가 졸기도 여러번. -.-;; 종이책이 아니라 분량이 손에 잡히는 건 아니지만 그닥 두꺼운 책은 아니다. 어쩌면 요즘 읽었던 총서류만큼이나 얇은 책이 아닐까. 그래도 끝까지 읽기에는 인내가 필요했다. 책은 인내로 읽는 거라는 생각을 여러번 하면서 본문을 다 읽고 역자 후기를 읽을 때에야 내가 왜 어렵게 느꼈는지 알게 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개념을 제시하고, 그 개념으로 거장철학자, 사상가의 논리를 비판하는 그런 철학책이었다. 그러니까 나도 이름은 알만한 거장철학자와 내가 이름조차 들어본 적도 없는 철학자, 사상가의 논리를 비판하는 글에서 나는 피로를 느꼈던 거였다. -.- 역자 후기를 먼저 읽고 본문을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다는 생각을 하다가 잊어버리기 전에 한 번 더 읽어보자 싶어 두 번을 읽었더니 조금 더 머리에 들어온다. 그러나 여전히 어려운 부분은 있다. 활동적 삶 챕터와 우울사회의 일부분..
시대마다 고유한 질병이 있다는데 현 시대의 주요 질병은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이라고 한다. 바로 전 시대인 규율사회는 규제와 부정성의 시대였고 그 시대의 질병이라면 히스테리였으나 지금은 성과사회이고 앞에 언급한 이 시대 질병의 원인은 긍정성의 과잉이라고 한다. 규율사회에서는 他者자가 나를 억압했지만 성과사회에서는 자신이 자신을 억압하고 착취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명료하게, 정확하고 충분히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 스키마에 맞는 정도로 이해하고 공감했다. 정말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서 형관펜을 그어가며 머리를 끄덕여가며 읽은 책이다.
책을 읽는 중요한 목적은 정보의 습득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 이해하는 힘을 키우는 것일게다. 내게 쉽지만은 않은 이 책을 여러 번 읽으며 조금씩 조금씩 더 깊이 이해를 해가는 과정이 '피로' 하기는 해도나를 키우는 의미있는 과정일 것이다. 94세 노교수의 말처럼 육체는 쇠잔해가도 정신은 날마다 자라나고 싶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성과주체는 노동을 강요하거나 심지어 착취하는 외적인 지배기구에서 자유롭다. 그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자 주권자이다. 그는 자기 외에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 점에서 성과줓는 복종적 주체와 구별된다. 그러나 지배기구의 소멸은 자유로 이어지지 않는다. 소멸의 결과는 자유와 강제가 일치하는 상태이다. 그리하여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봉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이러한 자기관계적 상태는 어떤 역설적 자유, 자체 내에 존재하는 강제구조로 인해 폭력으로 돌변하는 자유를 낳는다. 성과사회의 심리적 질병은 바로 이러한 역설적 자유의 병리적 표출인 것이다.
잠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깊은 심심함은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다. 단순한 분주함은 어떤 새로운 것도 낳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재생하고 가속화할 따름이다.
"귀 기울여 듣는 재능"은 깊은 사색적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능력에 바탕을 둔다. 지나치게 활동적인 자아에게 그런 능력은 주어지지 않는다.
겉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보다 더 많은 활동을 하는 때는 없으며, 홀로 고독에 빠져 있을 때만큼 덜 외로운 때도 없다.
우울증, 소진증후군,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와 같은 오늘날의 정신 질환은 심적 억압이나 부인의 과정과는 무관하다. 그것은 오히려 긍정성의 과잉, 즉 부인이 아니라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무능력함, 해서는 안 됨이 아니라 전부 할 수 있음에서 비롯한다.
자본주의가 일정한 생산수준에 이르면, 자기 착취는 타자에 의한 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능률적으로 된다. 그것은 자기 착취가 자유의 감정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성과사회는 자기착취의 사회다. 성과주체는 완전히 타버릴Burnout 때까지 자기를 착취한다. 여기서 자학성이 생겨나며 그것은 드물지 않게 자살로까지 치닫는다. 프로젝트는 성과주체가 자기 자신에게 날리는 탄환Projektil임이 드러난다.
21세기의 대표 질병인 소진증후군이나 우울증 같은 심리 질환들은 모든 자학적 특징을 나타낸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폭력을 가하고 자기를 착취한다. 타자에게서 오는 폭력이 사라지는 대신 스스로 만들어낸 폭력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러한 폭력은 희생자가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
"강한 영혼"은 "평정"을 유지하고 "천천히 움직이"며, "지나친 활발함에 대한 거부감"을 품기 때문이다.
사회가 원자화되고 사회성이 마모되어감에 따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존해야 할 것은 오직 자아의 몸 밖에 없다. 이상적 가치의 상실 이후에 남은 것은 자아의 전시가치와 더불어 건강가치뿐이다. 벌거벗은 생명은 모든 목적론, 건강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하는 모든 목표 의식을 지워버린다. 건강은 자기 관계적으로 되며 목적 없는 공허한 합목적성으로 전락한다.
좀 떨어진 곳에서 전체적인 사회를 조망하는 철학자의 시각을 따라 읽으면서 남이 아닌 자신이 자신을 착취하는 모습을 내게서, 내 친구에게서 보기도 하고 요즘 젊음의 유지와 건강에 목숨거는 트렌드가 아, 이래서 그런거구나 하고 머리를 끄덕이기도 했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에만 급급하며 살다가 넓고 깊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 책이 나를 쿡 하고 찔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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