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과 스트라빈스키
샤넬과 스트라빈스키
얀 쿠넹 감독 / 아나 무글라리스, 매드 미켈슨
가을 초입에 만나는 청명한 날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 법. 어제는 투명한 햇살이 멀미가 날 지경으로 부담스러운 날이었다. 그래서 어두운 곳을 찾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까. 갑작스럽게 영화나 한 편 봐야겠다고 마음먹고 나섰다.
샤넬과 스트라빈스키. 이 영화는 다른 이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 서울 시내에 딱 두 곳에서 상영한다. 6시에서 1, 2분 지각을 했을 뿐인데 이미 영화는 시작하고 있었다. 어지러운 문양이 화면을 가득 메우면서. 그리고 그 장면은 영화가 끝나는 마지막 장면에도 다시 등장한다.
영화는...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건조한 시선으로 장면만 보여준다. 샤넬에게도 스트라빈스키에게도 감정이입이 쉽지 않았다. 다만 그냥 볼 뿐이다. 예술과 도덕 그리고 불륜에 대해서 냉정한 시선으로, 누구를 편들라고 혹은 누구를 이해하라고 강요하지 않은채 영상은 돌아간다. 그래서 나도 아무런 판단을 내리지 않고 냉정하게 영상을 바라보며 머리속으로는 생각한다. 샤넬 No.5와 봄의 제전을 탄생시킨 영감은 어떤 것일까. 그들은 어떤 사랑일까.
마지막 부분, 늙은 스트라빈스키의 모습과, 샤넬이 자글자글한 늙은 노파가 되어 침대에 몸을 부리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장면(그들은 함께 있지 않았다.). 그제서야 그들의 감정이 이해가 갔다.
쉽지 않은 영화였지만 슬쩍 비춰지는 1920년대의 시대적 혼란과 그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영상과 음악이 아름다운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