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졌어요
1.
어제 밤 늦은 시간에 EBS에서 하는 달라졌어요 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부제가 엄마의 빈둥지였던가.
술과 도박을 일삼으며 가정을 돌보지 않던 남편에게 폭력까지 당하면서 평생을 살아왔던 아내는 어려움 속에서도 아들 셋은 잘 키워 결혼시키고 혼자 남았다. 밉고 싫은 남편은 평생 밖으로 돌다가 70이 되어 가정으로 돌아왔고 아내와 잘 지내고 싶었지만 아내의 마음은 평생의 상처로 돌처럼 굳어 있었다. 이미 이혼소송을 통해 판결을 받은 상태에서 숙려기간도 지키지 않고 남편이 구청에 신고를 해서 서류상 이혼상태였는데 그 부분, 말도 없이 구청에 신고해서 이혼이 되버린 것도 아내에게는 굉장히 섭섭한 일이었다. 이혼은 했으나 한 집안에서 각 방을 쓰며 서로 대화도 없이, 가끔씩 대화하면 결국은 싸움으로 번지는 상태로 살고 있었다. 6개월여의 제작기간동안 제작진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 부부의 화해를 이끌어 내었고 마지막 장면은 해피엔딩을 예상하는 것으로 끝마쳤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특히 엄마가 심리치료과정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부분을 보면서 아, 나는 저런 고통스런 상황을 겪지 않아서 행복하구나. 살아오는 동안 분노라는 감정을 그닥 느끼지 못해봤고 남에게 상처를 입은 기억도, 폭력을 당한 기억도 없으니 참 다행이고 행복하다... 생각하다가 불현듯 혹시 누군가가 나 때문에 상처받거나 분노하거나 힘들어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별이아빠가 다 늙은 후에 나한테 섭섭했다고 프로그램의 아내처럼 나를 괴롭히지는 않을까? 우리 부모님이 나를 원망하지는 않을까? 별이가 나를 탓하지는 않을까? 혹시 남을 힘들게 하면서 나만 맘 편하게,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살았던 건 아닐까 하는 염려가 들어 마음이 작아졌다. -.-
과거에 그랬더라도 이제는 주변을 돌아보며 살아야지.
2.
어제 일요일, 예배를 마치고 엄마가 다니는 교회로 갔다. 총동원주일이니 예배에 꼭 오라는 전화를 여러번 받았기 때문이다. 총동원은 무슨 총동원, 군대냐? 전시냐?? -.-+ 이런 마음을 갖고 갔다. 나마저 가지 않으면 엄마가 기죽을테니... 한 교회에 오랜 세월 함께 다녀온 엄마의 또래들은 긴 세월 때문에 서로 모르는 것이 별로 없고 친하게 지낸다. 노인들이 갈 곳이 있고 만날 친구들이 많다는 건 참 좋은 일인데 부작용이 있다면 자식들을 비교하는 것, 자랑하는 것이다. 엄친아, 엄친딸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일게다. 누가 자식에게 가방이라도 하나, 옷이라도 한 벌 선물 받으면 그것을 꼭 자랑하고 그 자랑을 듣는 엄마들의 자식은 그날 밤 전화로 시달림을 받는 경향이 있다. 물론 우리 엄마는 보통의 엄마와는 조금 달라서 내게 그런 얘기 전혀 하지 않지만 엄마 친구들이 모여 어떻게 노는지 무슨 대화를 하는지 잘 아는 나로서는 그 분위기를 모를 리가 없다. 이것이 선물이나 물질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총동원주일에 누구 자식이 더 많이 오는가가 비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세 자식 중에 나 하나 달랑 간 우리 엄마는 자식들 모두 동원한 친구들 앞에서 겨우 면피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예배가 끝나고 식당에 올라가니 엄마가 아빠랑 내 식사를 받아다 놓고 모임이 있다고 내려가셨다. 아빠 옆에 앉아 아빠가 앉는 의자를 깊숙히 넣어주고 반찬을 먹기 좋게 놓아드리고 다 드신 후에는 식기를 챙겨 개수대에 옮겨다 놓았다. 그리고 스틱을 짚고 일어날 때 다시 의자를 빼 드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카페까지 같이와서 아빠는 아빠 친구와, 나는 내 친구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는 아빠가 남의 도움이 없이는 교회에 다니는 것도, 식사를 하는 것도 모두 힘들어 보였다. 정신은 맑고 자존심은 드높아서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어 보이는데 그걸 또 내색하지 않는다. 내색하면 자존심이 상하니까. 현관 문밖 출입도 못하면서 매일 깨끗하게 면도하고 추리닝이 아닌 정장류 바지에 벨트까지 매고는 소파에 반듯하게 앉아 아빠는 하루종일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생각이 두렵다.
이제, 어쩔 수 없이 부모님 수발期로 들어서야겠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미연이가 한마디 한다. 아무래도 네가 와서 부모님 모시고 다녀야 할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