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혼자놀기

little tree 2011. 8. 22. 17:01


별이가 집을 떠난 이후 먹을 기회가 별로 없는 음식이라면 치킨, 피자, 스파게티 정도 되겠다. 남편은 나랑 입맛이 달라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친구들도 이제는 입맛의 변화와 칼로리의 압박 때문에 만나더라도 패밀리레스토랑에 가거나 스파게티, 피자를 먹으러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피자와 스파게티가 먹고싶어진 지 꽤 오래 되었건만 먹을 기회도, 함께 먹을만한 친구도 구하지 못해 참고 있었는데 지난 금요일, 드디어 욕구가 폭발하고야 말았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검색을 해보니 가까운 명동에 리미*라는 스파게티집이 두 군데 있다.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곳이긴 한데 좌석도 많고 혼자 가기에 부담이 덜할 것 같아서 퇴근하고 명동으로 향했다. 미리 약도를 보고 간 터라 찾기는 쉬웠고 3층으로 올라가보니 별이같은 아이들이 식당안을 가득히 메우고 있었다.혼자 앉기에 적당한 2인용 테이블로 안내를 받아 앉자마자 스파게티를 주문했는데 손님이 많아서인지 꽤 긴 시간을 기다린 것 같았다.

드디어 스파게티 접시가 내 앞에 놓였는데 딱 보니 보기에 그닥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면이 좀 덜 삶아진 느낌. 이곳에 주로 오는 젊은 친구들은 이런 정도로 삶아진 것을 좋아하나? 생각하면서 내 식성을 그 집 수준에 맞추어 먹었다. 배도 많이 고팠고 꽤 오랜만에 먹는 스파게티라 혀와 머리에서는 맛이 없다고 생각하는데도 입은 한 오라기 남기지 않고 모두 먹었다.

소화시킬겸 근처 을지서적에 들러 친구가 추천한 얇은 책을 한 권 사고 슬슬 책 구경을 하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온다. 아무래도 맛있게 먹지 않아서 탈이 난 모양. 조금 더 용기를 냈더라면 가고 싶은 곳에 가서 먹었을텐데. 그랬다면 맛있게 먹고 탈도 나지 않았을텐데. 어쨌거나 처음으로 혼자서 스파게티 먹기, 해냈다. 다음에는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

혼자 있는 거, 혼자 노는 거 잘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즐기는 것도 같은데 그게 싫을 때가 많다. 아무리 그래도 앞으로 살면서 혼자 해야 할 때가, 혼자 해야 할 일이 점점 많아질 것이고 결국에는 모든 것을 혼자서만 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서 혼자 놀고, 혼자 하고, 혼자 먹는 것을 익숙하게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할 일. 혼자하는 것을 겁내지 말아야겠다. 자꾸 하다 보면 익숙해 지겠지.

사람 사는 건 모두 따로 또 같이라. 부부가 사는 것도 그렇고.

같이 하는 건 같이 하는 즐거움, 혼자 하는 건 혼자 하는 즐거움. 상황에 처하는대로 그것을 즐길 수만 있다면 좋을텐데. 그러기 위해서 혼자 노는 일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하고 또 함께 있을 때는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