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tle tree 2013. 7. 31. 14:16

 

 

 

 

 

27일에 들어온다던 연희는 28일 일요일에 들어왔는데 교회일로 바빴다고 했다. 월요일에 메일을 주고받고 화요일 아침에 통화했는데 다음날 출국이라며 통화한 날 오후에 보자고 했다. 잘되었다. 미경이가 월요일에 들어왔으니.

 

급히 연락을 해서 4시 30분에 이태원에서 만났다. 두 딸과 함께 와서 딸들은 인사만 하고 이태원 쇼핑하러 가고 우리는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미경이도 연희도 서로 언제 마지막으로 만났는지 가물가물해 한다. 1984년 연희가 처음으로 한국에 들어왔을 때 내가 연락을 해서 같이 만났었고만. 그러고보면 연희와 미경이는 30년만의 만남. 세월이 우리들 얼굴에 흔적은 남겨놓았지만 충분히 알아보고도 남는다. 거리에서 지나치는 것만 아니라면야.

 

무엇보다 두 딸래미가 반가웠다. 첫째는 다섯살 때 보고 처음으로 본 것이고 둘째는 뱃속에 있는 것만 보고 사진을 본 적이 있을 뿐이다. 첫째는 오동통한 볼과 장난끼는 사라졌지만 어릴적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둘 다 체격이 가늘가늘하고 외모도 예쁘게 잘 자랐다. 친구 딸을 보고 이쁘다고 느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이쁘고 부러웠다. 다섯살 차이라는데 첫째가 어찌나 어려 보이는지 둘다 비슷해서 언니, 동생을 구별할 수가 없었다.

 

한시간이 조금 넘게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쇼핑하러 간 딸들이 돌아와 같이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이태원은 몇년 전 걷기대회의 한 코스로 걸어서 지나가본 적이 있고 언젠가 대권이랑 점심을 먹으러 간 적이 있기는 한데 내게는 낯선 곳이다. 만나러 가기 전에 검색을 해봤지만 외국음식들이 어떤지도 모르겠고 딸래미들이 뭘 좋아하려나도 모르겠어서 에라, 가서 부딪혀보자 하고 정한 곳 없이 갔기 때문에 일곱이 주루룩 걸어가면서 연희가 대충 골라들어갔다. 멕시코 음식을 파는 곳, 그것도 가벼운 식사를 파는 곳이었다. 이것저것 어렵게 시켜서 나누어 먹으며 딸들과 얘기를 나눴다.

 

딸들은 영어로 말했다. 엄마와도 영어를 쓰는 걸 보니 실생활의 언어는 영어인 모양이다. 둘째딸은 별로 말이 없고 첫째가 그래도 대화에 끼는데 한국말은 알아듣지만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은 조금 어려운 것 같았다. 엄마의 학창시절 모습이 궁금했었는지 어떤 학생이었냐고 묻는다. 물론 우리는 연희가 통역을 해서 알아듣고. 비장의 카드, 미화에게 대답하라고 했다. 딸래미는 미화가 말하는 것을 재밌어 한다. 미화는... 스스로 우리에게 웃음 주기를 원하지는 않지만 하는 행동이 우리를 웃게 만드는, 여전한 사차원의 아줌마. 행동, 제스츄어, 말 모두 우리를 웃게 만든다. 내가 연희가 팔방미인이었다고 얘기해주라고 했더니 잠시 뜸을 들이더니 못 전하겠단다. 하하.. 딸래미들은 우리에게 연희가 어떤 존재였는지, 연희의 학창시절이 어땠는지 듣고도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

 

일곱시쯤, 딸래미들이 원하는대로 동대문쇼핑을 가기 위해 세모녀는 떠나고 의기투합한 미화와 효숙이 덕분에 우리는 다같이 이태원에 남았다. 헤어지기 전, 잊을 뻔했다가 겨우 누군가 기억을 해내서 길가에서 사진을 한 장 찍고 포옹으로 인사를 나누고 택시를 태워 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효숙이 원하는 주종에 따라 소주를 한 잔 하러 이태원 뒷골목을 뒤져 홍석천이가 하는 주점에 들어갔다. 안주는 태국음식. 얼큰한 거 찾는 친구들 때문에 얼큰한거 한 가지, 또 하나는 아삭아삭할 것 같아보이는 숙주와 베이컨 볶음. 내가 골랐는데 이름은 기억도 안난다. 소주는 한 병에 오천원. ㅎ 이태원은 분위기값을 더 치러야 하는 모양이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나누는 동안 오픈된 창밖으로는 비가 세차게 내렸다. 아, 세찬 빗소리 들으면서 한 잔 하는, 그것도 오랜만에 업된 친구들을 보는 즐거움이 컸다.

 

 

 

 

그곳에서 나와 서울펍이라는 곳으로 갔는데 그곳은 외국인들이 많았고 미화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묻힐만큼 시끄러운 곳이었다. 웃고 떠들기에 아주 좋은 그곳에서 흑맥주를 마시고 이제는 집에 가야 할 시간.

 

펍을 나섰는데도 아쉬움이 남은, 그리고 서로 의기투합한 미화와 효숙이가 좀더 있기를 원했다. 미경이는 장거리 여행에 피곤하기도 하고 돌아가야 할 곳도 구리. 모처럼 기분 업되고 기분좋게 취한 두 친구는 남겨두고 나랑 미경이는 그냥 전철을 타러 내려왔다. 뭐, 오십먹은 아줌마들한테 뭔 일이나 생기겠어? 스스로 위로를 하며.

 

집에 와서 샤워를 하는 동안 미화의 전화도 받고 효숙이와 통화도 했다. 느낌에 괜찮은 것 같았다.

 

잠자리에 누웠는데 뭔가 연희와 두 딸들한테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커피와 서울펍에서 효숙이가 계산하고 식사와 홍석천이 가게에서는 미화가 값을 치렀다. 효숙이나 미화는 자주 볼테니까, 그리고 미경이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괜찮은데 한 번 만나고 헤어질 수밖에 없는 연희와 두 딸에게 차 한잔, 밥 한끼 사주지 못했다는 게 맘에 걸렸다. 생각해보면 두 딸래미를 내가 다시 만날 기회도 없을텐데.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이기 쉬운 기회였는데... 잠을 자면서도 그 생각에 깊이 잠들지 못하는 그런 후회가 밀려왔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마음이 무거웠는데 갑자기 좋은 생각이 들었다!

출근해서 아침 묵상을 끝내고는 연희와 두 딸래미를 만나 딸래미들을 위한 작은 선물을 했다.

마음이 한결 가볍다.

 

지금쯤 비행기에 올랐겠다.

멀리 있어도 마음은 늘 가까운,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본 듯한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