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하루..
홍수가 왔다.
방학하면 한 번씩 만났는데 연락이 없어서 전화를 했더니 전화도 안받고.. 무슨 일인가 궁금했는데 연락이 왔다. 안식월이라 8월 한달 쉬는데 늘 만나던 내 휴가 즈음에는 명상수련하러 갔다 왔단다. 전보다 조금 더 마른 느낌인데 얼굴이 좋다. 피부가 깨끗하고 환한 느낌. 알고보니 채식을 한 지 10개월이 된단다. 아마 지난번 만났을 때도 채식을 시작한 후였을텐데 그때는 얼마 되지 않아 변화가 눈에 띄지 않았고 이번에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몸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고기와 계란은 먹지 않는데 아직 생선은 먹는다고 해서 점심은 품앗이에 가서 순두부와 고등어구이를 먹었다. 홍수를 기다리면서 명동돈가스를 먹을까 생각했는데.. 점심 먹고는 사무실로 바로 올라왔다. 커피숍은 비싸기도 하거니와 오래 앉아 있기도 불편하고 답답해서. 좁은 사무실이라도 우리 사무실이 편하게 앉아 수다떨기에는 훨씬 나으니까. 커피도 안마시고 수다 떨다가 한참 지난 후에 홍수가 담갔다고 가져온 오미자액으로 따뜻한 차를 만들어 한 잔씩 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주로 늙어가는 부모님 이야기, 최근 둘 다 이사했으므로 이사한 이야기, 채식이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해, 하루종일 함께 보내는 꼬마들 이야기와 교사들 이야기, 뭐 이거 저거 5시 반까지 이야기를 이어갔다. 홍수는 자기의 직업이 너무 감사하다고 한다. 전에 만났을 때는 나이먹어가면서 힘에 부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꼬마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참 행복하다고 말하는 표정이 밝다. 꼬마는 늙은 할미같은 저를 보고 웃고 저는 꼬마들을 보고 웃고 하루종일 히히덕 거린다고.
우리들 엄마의 건강에 대해 얘기할 때는 마음의 평화가 화두였다. 아직도 아버지를 너무 좋아한다는 홍수 엄마와 아빠 때문에 마음이 힘들지도 모를 우리 엄마. 모두 다 마음의 평화를 잃은 것이 병의 원인이다. 내가 읽은 책을 엄마주려고 한다 그랬더니 그 책을 보고 자기도 사서 엄마를 드린다고 해서 헤어지기 전에는 같이 교보에 가서 그 책도 샀다.
명상수련을 하고 왔다는 홍수는 내가 보기에 그보다 더 평안하게 살 수 있을까 싶은데 내게 말하지 않는 고민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그만한 인생의 걱정거리를 갖고 힘들어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스트레스 없는 직장이 있겠냐마는 그렇게 꼬마들과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하다는데. 두 딸래미들도 잘 키워서 생각이 깊고. 걱정거리라면 저나 나나 쌓아놓은 재물이 없다는 것 뿐.. ㅎ
명상수련 다녀온 이야기를 듣다보니 나도 몇 년 전에 그렇게 쉬고 싶은 적이 있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묵언수행할 곳을 검색해보고 했던 적이 있었지. 스트레스와 경쟁에 지친 사람들은 한 번쯤 해 볼만하다. 효과가 클 거라 생각이 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템플스테이 하는 사람도 많고. 어제 티비에서도 그런 걸 해줬다. 템플스테이 하는 사람의 4분의 1이 불교인이 아니라는 거. 힘이 드니까 휴식하고 싶은데 휴가라고 나갔다 오면 더 피곤하고 힘들고... 몸과 마음이 함께 쉴 수 있는 수련이 점점 주목받고 있는 이유이다. 홍수가 간 곳은 (대부분 그렇겠지만) 밥도 다 해줘서 먹고 말없이 명상하는 것이 일과라고 했다. 명상하다보면 졸기도 하고. ㅎㅎ
일주일에 한 번, 요일을 정해 반찬을 해가지고 엄마한테 간다고 한다. 주변에 친구들은 모두 효자 효녀. 나도 부모님이 좀 더 늙어지면 그렇게 해야겠지. 형제지간에 무의식에 깔려 있었을 좋지 않은 감정들을 꺼내기도 하고.. 오랜 시간을, 방해받지 않고 이야기하다 보니 내면 깊은 곳의 얘기까지 끄집어내진다. 상처 없는 영혼이 있으랴. 무의식 깊은 곳에 잠자고 있는 것들을 꺼내어 인정하고 위로하는 것이 누구나에게 필요한 일일 것이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사는 동안, 마음은 깊게 병들어가게 되니..
홍수가 둘째딸이 좋아한다고 사서 담갔다는 오미자액. 옛날에는 주변에 있는 먹거리가 다 웰빙이었겠지만(지금 시각으로) 지금은 좋은 것을 먹으려면 그 옛날보다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하다. 좋은 재료를 구하는 것도 그것을 먹도록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 정성껏 만들어서 내 생각하고 한 병 가져 온 것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