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
1. 어제
2시를 조금 넘겨 단비엄마의 전화가 왔고 근처에서 만났다. 사무실에 P님이 있었고 P님도 단비엄마를 기억할테니 편하게 얘기하기는 까페가 낫겠다 싶어서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명보극장 사거리에서 만났을 때 일차 포옹을.. ^^ 그리고 지하철 역에서 헤어질 때 또 포옹을.. -.-;; 내가 표현에 인색한 사람인 건 확실하다. 나도 반갑기는 했지만 포옹할 생각은 못했으니까.
지난 여름, 연희가 한국에 들렀을 때 출국하는 날 내가 그 친구의 숙소에 가서 만나고 돌아올 때, 배웅나온 연희는 포옹을 하려고 했는데 나는 엘리베이터에 쏙 타고 말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나서야 그게 어떤 상황이었는지 이해가 되었고 나는 후회했다.
단비엄마는 열심히 살았다. 이것저것 배우기도 하고 라이선스도 따고.. 다니던 직장을 계속 다녀서 벌써 12년차란다. 단비는 졸업하고 취직하고 둘째는 고3. 두고봐야 알겠지만 좋은 학교에 수시를 넣었으니 그중에 하나 갈 수 있겠지. 힘들게 살아온 날들에 대한 보상이라면 보상이랄까.
먼저 전화가 왔을 때 얘기했던 것처럼 내게 얘기한 것, 내가 얘기한 것을 통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세월이 조금 흘렀을 때부터 내 생각을 많이 했고 우리 사무실 근처까지 왔는데 못찾았다고 했다. 내 이름이 카톡에 떴을 때 눈물이 왈칵났다고...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참 무심했구나 싶다. 그때는 그랬다 하더라도 세월이 조금 흐른 다음에 연락을 해 볼 것을... 나는 그 친구가 나를 기억하고 싶어 하지도 않고 싹 잊어버리고 사는 줄로만 생각했다. 언제든 내게 연락하고 싶을 때 하라고 했고 그때의 핸드폰 번호로 지금도 연결이 되므로 원하면 내게 연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내 예상과는 다른 얘기를 듣고 내가 잘못했구나, 내가 무심했구나 후회가 들었다. 그러나 그건 내 마음이 그런거지 내쪽에서 찾을 방법은 없었다. 전화번호를 그 후로 두 번이나 바꿨다고 하니. 직장을 알고 있으니 찾으려면 찾았을까? 그러나 그 친구가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해왔기 때문에 그럴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지.
어쨌든 오랜만에 만나서 그동안 살아온 얘기, 지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는 다짐에 그러자고 대답도. 둘째가 대학에 입학하면 그때부터 좀 자유롭고 편하게 지내라고, 수능이 끝나면 우리집에 와서 하룻밤 자고 가라고 했다. 그땐 별이아빠가 부침개를 부쳐줘야 할 거다. ㅎ
나이가 비슷하니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도 비슷하다. 퇴직하면 무엇을 해야 하나... 같은 고민을 하면서 나는 머릿속 계산으로만 결론을 내었고 그 친구는 직접 몸으로 부딪혀 준비했다는 게 다른 점이다. 존경할만한 친구. 이야기 끝 우리가 함께 내린 결론은, 가진 것은 없으나 남이 가지지 않은 것을 가졌다는 자각, 그리고 그에 대한 감사.
2. 그제
미쓰홍과 미쓰리언니를 만났다.
미쓰홍, 미쓰리, 미쓰강으로 불리던 시절의 사람들. 30여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주 가끔씩 소식을 전하고 아주 가끔씩 얼굴도 보고 그러면서 살았다. 아이들이 크고 여유가 생긴 후부터 자주 보기를 원했으나 소극적인 내 탓에 미루어오다가 그제 셋이 만났다. 시어머니 봉양하는 미쓰홍은 저녁 약속은 어렵고 점심이 좋단다. 나야, 더 좋지. 두 달에 한 번, 네번째 월요일 점심을 우리 삼실 근처에서 먹기로 했다. 사정상 펑크가 나면 그냥 넘어가는 걸로, 그러니까 두 달, 혹은 네 달에 한 번씩 점심을 먹게 되겠지.
나에 비해 미쓰홍과 미쓰리는 약아 빠지고 조금은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건 내 생각만이 아니라 본인들도 그렇게 판단을 했었는데 살아온 날들을 보니 나는 이기적으로 살았고 미쓰홍과 미쓰리는 참으로 착하게 살았더라. 요즘 내가 이기적이구나, 내 위주의 삶을 살았구나 깨닫게 되는 건 주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살아온 얘기를 들으면서 드는 생각이다. 내가 악하게 살았던 것도 아니고 욕심을 부렸던 것도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내 인생이 이기적이었다고 생각이 드는 건 내게 희생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남에게 피해를 준 일은 없다지만 남을 위해 손해 본 것도 없는 삶. 무심한 삶. 어찌보면 주변 환경이 힘겹지 않아서, 그러니까 내 희생을 필요로 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고.
지하철 역 입구에서 미쓰리언니가 헤어지면서 하는 말. "그래도 우리 세월이 30년 아니냐."
같이 있을 때는 몇날 며칠을 미쓰리언니랑 말도 안하고 지낸 적도 있었다. 기분이 상하면 입이 닫혀버리는 내 성격 때문에 피곤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 고만고만한 철없던 시절에 찌그럭째그럭거리며 지냈는데 살아온 세월이 그 모든 것들을 퉁쳐서 하나로 말한다. 좋았던 때라고. 그리고 찌그럭째그럭 밉던 얼굴이 어쩐 일인지 곱고 예쁜 얼굴 되어 내 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