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권유
고독의 권유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강북문화정보도서관 / 교보도서관앱
1979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신춘문예에 시와 문학평론에 각각 입상하면서 등단했다는 지은이는 다독가이고 출판 쪽에 오래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요즘 갑자기 주변이 시끄러워져서 고독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차 눈에 띤 '고독의 권유'를 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지은이의 여정이 맘에 들었고 또 지은이의 생각도 내 생각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 친근하게 느껴졌다. 역시! 이 사람도 소로우와 헬렌 니어링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었다. 반가웠다. 지은이는 시골생활을 하면서 자연과 고독을 향유하며 고독을 권유한다. 시골생활에 들어가게 되는 과정과 온 몸과 정신이 도시화된 사람이 시골에 적응하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 모든 이야기들이 내게도 해당되는 고민이고 갈등이다. 이 책은 내 정신을 신선하게 샤워시켜주었고 조용한 삶, 사색의 삶, 고독의 삶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또한번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것이 혼자 충만한 삶이고 그것은 내가 바라는 삶이다. 남과의 관계는 그 후의 얘기다. 내가 충만해야 남과 나눌 수도 있으므로.
과거에 비해 살림이 더 늘고 사회 전체도 풍요로워졌지만, 이상하게도 행복은 그에 비례해서 늘지 않는다. 절제를 모르는 무분별한 풍요와 사치를 쫓으면서 우리 삶은 더 많은 시간을 기쁨이 없는 노동에 종속시키고 불행 속에서 허우적거릴 뿐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가 추구한 부와 재산 쌓기가 불필요한 필요의 끝없는 확장에 지나지 않았다는 증거다. 자연은 잉여를 허락하지 않고, 낭비를 스스로 정화하는 구조로 진화해왔다. 벌집은 최소한의 밀랍으로 가장 튼튼한 구조를 이루고, 새의 뼈나 깃은 최소한의 무게로 공중을 나는 힘을 지탱한다. 자연에서는 생물학적 생존에 군더더기가 되는 낭비란 죄악이다. 자연을 떠받치는 일체의 낭비가 없는 단순함이 가난이라면, 과식과 탐욕에서 자유스러운 가난이야말로 진정한 부와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이다. 그런 가난을 마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만이 더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라는 역설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경제적 가치에만 정신이 홀려 내적 성장, 은둔, 고독, 깊은 산과 같은 침묵, 존재하는 것의 평화로움 따위의 정서적 가치는 홀대하며 살았습니다. 지난 몇십 년 동안 나라 경제 규모는 커졌고, 개인들도 전보다 물질의 풍요를 더 많이 누리게 되었지요. 경제적 가치를 좇는 삶은 겉보기엔 맴시 있는 삶이지만, 한데 속이 비어 있어요.
오랫동안 내가 꿈꾸었던 삶은 새벽부터 낮까지 지치도록 글을 쓰고, 그 다음에는 산책을 하고, 해가 진 뒤에는 등을 밝히고 책을 읽는 생활이다. 나는 소로우처럼 숲에서 혼자 살아보고 싶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단조로운 삶, 소음과 불필요한 전화와 일체의 번잡스러움과 차단된 조용한 시골생활을, 해가 지고 나면 집 뒤 어두운 대숲에 새들이 깃드는 것을 관조하는 시골생활을 오래 꿈꾸었다.
나는 꿈꾼다. 밝은 방, 사람들의 웃음소리, 음악, 책, 담소, 평화로운 저녁, 오솔길... 나는 진정으로 사람들과 떨어져 외톨이가 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사람들과 만나 덧없는 잡담으로 소모하는 시간은 끔찍하다. 내가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것은 사람들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내가 정한 삶의 규범들을 깨뜨리고, 내가 지향하는 '깊고 고요한 삶'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나는 침묵, 견고한 책상, 펜과 백지, 나만의 시간, 무서운 집중력...들을 꿈꾼다. 강한 자만이 무엇인가를 이루어낼 수 있고, 강한 자만이 자기만의 시간을 취한다. 인류에게 유익한 그 무언가 경이로운 것은 거의 모두 정금과도 같은 순도 높은 자기만의 시간에서 탄생한다. 자기만의 시간의 그 초인적 인내, 그 몰입, 그 황홀한 자기 연소 없이는 진부한 삶 외에 아무것도 없다.
시골에서의 삶은 단순하며, 한가롭고, 느리며, 느슨하기까지 하다. 시골의 길 위에서 뛰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란 매우 드물다. 새벽에 일어났다 할지라도 몽롱하지 않다. 충분한 휴식과 수면을 취했기 때문이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 가서 살기를 마음먹고 내려온 사람은 도시의 삶이 강제하는 무한속도 경쟁의 터널에서 빠져나온 사람, 즉 탈주자다. 그가 시골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도시적 삶의 양식에서 탈주할 뿐만 아니라 능동적으로 시골에서의 삶이 요구하는 단순함의 방식, 느림의 방식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달리는 토끼에서 천천히 기어가는 달팽이에로의 전환을 뜻한다. 그것은 인간을 욕망의 덫과 고속화된 속도와 생산성의 유령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근본 생태주의의 삶의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라. 마음의 평정을 잃지 말라. 집, 식사, 옷차림을 간소하게 하고 번잡스러움을 피하라. 날마다 자연과 만나고 발밑에 땅을 느껴라. 농장 일이나 산책, 힘든 일을 하면서 몸을 움직여라. 근심 걱정을 떨치고 그날 그날을 살아가라. 날마다 다른 사람과 무엇인가를 나누라. 혼자인 경우에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무엇인가 주고,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를 도우라. 삶과 세계에 대해 생각에 잠겨보는 시간을 가져라. 할 수 있다면 생활에서 웃음을 잃지 말라. 만물에 깃들여 있는 하나의 생명을 눈여겨보라. 그리고 세상의 모든 피조물에 사랑을 가져라. <헬렌 니어링>
혼자 고립되어 있는 상태를 선택한 사람에게 이것은 열린 기회이고, 새로운 삶으로의 도약이다. 그들만이 진정한 고독의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홀로 있다는 것, 홀로 깨어 있는 의식으로 '홀로 있다는 것'을 냉철하게 관조하는 것, 그것이 고독이다. 홀로 있는 시간은 진정한 자기에게로 돌아가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이다. 그것은 내면에의 응시이며, 참자아와의 대면이다.
침묵은 우리에게 살고 죽는 일의 영원한 순환, 그 번뇌, 그 진실의 안과 밖을 보여준다. 한순간의 밝음처럼 스치는 지혜의 빛 속에서 우리는 풀 길 없었던 삶의 비밀을 엿보게 된다.
해질 무렵 잔디밭 위로 길게 늘어뜨려지는 땅거미는 곧 다가올 밤을 예고한다. 내 마음을 떠도는 알 수 없는 불안과 쓸쓸함, 생을 헛되이 소모하고 있다는 초조함에 쫓기게 될 때, 내 마음속에 먼지처럼 떠도는 그것들을 고요히 가라앉혀주는 것은 밝은 등 밑에서 펼쳐드는 한 권의 책이다. 마음의 소란은 고요히 가라앉고, 나는 내면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그 몰입은 평화로운 충만과 행복을 준다.
나의 정신은 오랜 공복으로 비어 있고, 그래서 삶이 더욱 남루하게 느껴질 때 더욱더 향기와 침묵으로 채워진 책을 만나고 싶어진다. 내가 책에 몰입하는 것은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삶의 세계 속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