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우울
주말은 깊은 우울에 빠질 때가 많다.
지난 주말에는 별이도 별이아빠도 밤 늦게야 집에 돌아왔다. 깨끗하게 온 집안을 청소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하고 오붓하고 좋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우울하다. 주중에 정신없이 바쁘고 주말에 한숨 돌릴 수 있는 생활이 되어야 하는데, 아니면 주중에 한가해도 주말에라도 바빠야 하는데 주중도 한가하고 주말도 한가해서 그런 것 같다.
분명히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열심히 살지 않았던 것 같고 현재도 열심히 살고 있지 않는 것 같고 앞으로도 열심히 살 것 같지 않은 예감. 뭔가 분주하게, 바삐 살았던 거 같은데 아무런 열매도 없는 것 같은 내 두 손. 앞으로 남은 날은 까마득히 길어 여전히, 계속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말들을 들으면서도 한 발 내딛을 수 없는 두려움. 그래서 정말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걸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무엇을 위해? 왜?
온갖 커뮤니티며 밴드에서는 아침마다 열심히 살자고 외쳐대는 글들이 올라온다. 모두들 정말로 열심히 살고 있는 걸까? 어떻게? 왜? 무엇을 위해? 나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말에 반항하고 싶다. 나는 천천히 살고 싶다. 느릿느릿 주변을 돌아보며 바람이 어디에서 어디로 부는지, 구름이 어디에서 어디로 흐르는지, 한가로운 풍경속에서 책이나 읽으며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살고 싶은데 사람들은 열심히 살라고 열심히 일하라고 열심히 돈벌라고 한다. 많이 벌어서 폼나고 화려하게 소비하며 살라고? 죽도록 벌어서 죽도록 사들이고 죽도록 내다 버리라고?
그러나 사실 나는 옳지 않다. 곰곰 생각해보니 나는 열심히 살지 않는게 아니라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는 결론이다. 그 원인은 내 천성이 게을러서라기보다는 내게 있는 두려움 때문이리라. 언제부터 이렇게 내 안에 독버섯처럼 두려움이 자라났을까. 무엇이든 다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교만한 마음이 하늘을 찌를 때도 있었는데... 무엇으로 이 슬럼프를 벗어날 수 있을까..
성경읽기
잠시 게으름을 피우던 성경읽기, 요즘 다시 하고 있다. 아침마다 목소리를 내어서. 하루는 신약, 하루는 구약을 읽던 방법을 바꾸어 신약 한 권이 끝나면 구약 한 권을 읽고 다시 신약, 구약... 하는 방법으로 순서대로 읽고 있는데 훨씬 낫다. 여전히 쉬운 성경을 읽고 있다. 처음 쉬운 성경을 읽을 때는 이해하기는 쉽지만 왠지 낯설고 거북했는데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고 편하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 하루에 한 장씩 읽는 잠언도 운율의 사라짐이 그닥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성경읽기 만으로는 부족한 느낌이 든다. 무엇이 내 마음을 잡아줄 수 있을까.
월든
내 기분에 따라 내 맘에 맞는 주제별로 한 챕터씩 읽던 월든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일독하는 것이 서너번째쯤 될텐데도 아직도 편하지 않은 챕터가 꽤 된다. 지루한 부분은 지루한 부분대로 의무감으로 읽고 지나가고 마음을 울리는 챕터는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는 월든. 내가 살고 싶은 모습은 월든 안에 있는데 비슷하게나마 살아볼 수 있을까. 몇년 전만 하더라도 서울을 벗어나고 관계를 벗어나서 살아가는 건 내게 좀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세월이 흐르면서 성격도, 생각도, 상황도 변하는 것이니까. 허나, 시골의 풍경은 글로 읽는 것과는 다르지. 냄새와 벌레, 그리고 쓰레기들. 그것마저도 감당할 수 있을 때가 올까. 너무 늦지 않은 때에 그런 때가 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