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월든 - 내 정신이 월든을 필요로 할 때, 그러나 긴긴 월든을 쉽게 읽기 힘들어서 한 챕터씩 읽게 된다. 챕터별로 읽다가 이번에는 맘 먹고 통독을 했는데 아마 서너번째일거다. 월든이 읽고 싶었던 이유는 은미의 블로그가 폐쇄상태라서인 듯하다. 나는 은미의 블로그를 통해서 꽤 힐링을 했었던 것 같다. 쉬운 힐링의 방법 하나가 막히니 쉽지 않은 힐링을 할밖에.
좋아하는 책이지만 읽는 것이 그닥 수월하지는 않다. 소로는 지금부터 200여년 전 사람이라 그 시대에 대한 이해와 소로의 풍부한 지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시대에 대한 이해는 가늠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의 풍부한 지식과 유머는 그저 글의 말미에 달아놓은 각주를 보고 짐작할 뿐이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아프게 와닿는 책이고 재미있을 것으로 짐작되나 그 재미를 충분히 음미하지 못하는 책이다. 이만큼이나마 읽고 공감하는 것도 여러번 읽은 덕일테니 앞으로 거듭 읽을수록 재미와 깊이를 조금씩 더 느낄 수 있게 되겠지 기대한다.
1. 경제학 中
유감스럽게도 내 경험의 폭이 좁아서 이 글은 나라는 주제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나는 모든 저자들에게도 남의 생활에 대해 주워들은 이야기만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의 생활에 대해 소박하고 진지하게 이야기해줄 것을 부탁한다.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난해한 사상을 갖거나 어떤 학파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고 지혜의 가르침에 따라 소박하고 독립적인 삶, 관용과 신뢰의 삶을 영위한다는 뜻이다.
3. 독서 中
책은 작가가 쓸 때 사려 깊고 신중을 기했던 것처럼, 독자도 읽을 때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읽기 위해 발끝으로 서서 최고의 주의력을 기울이며 정신이 말끔한 시간을 바쳐야만 하는 독서가 참다운 독서인 것이다.
4. 소리 中
나는 내 생활에다 넓은 여백을 남기기를 좋아한다. 여름날 아침이면 이따금 이제는 습관이 된 멱을 감고 나서 해가 잘 드는 문 앞에 앉아 새벽부터 정오까지 한없이 공상에 잠기곤 한다. 나의 주위에는 소나무, 호두나무, 옻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으며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고독과 정적이 들어차 있었다. 오직 새들만이 곁에서 노래하거나 소리 없이 집 안을 넘나들었다. 그러다가 해가 서쪽 창문으로 스며들거나 멀리 한길을 달리는 어느 여행자의 마차 소리가 들리면 그제야 비로소 시간이 흐른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런 계절에 밤의 옥수수처럼 자랐다. 이 시간들은 손으로 하는 어떤 일보다 훨씬 더 소중했다.
아, 이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힐링이 돼~
5. 고독 中
가장 감미롭고 다정한 교제, 가장 순수하고 가장 격려가 되는 교제는 자연계의 사물에서 발견될 수 있었다. 자연 한가운데에 살면서 감각 기능을 제대로 유지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암담한 우울증이 있을 수 없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지내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같이 있으면 곧 지루하고 주의가 산만해진다. 나는 혼자 있을 것을 좋아한다. 나는 고독처럼 어울리기 좋은 친구는 발견하지 못했다. 우리는 대체로 방 안에 홀로 있을 때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 사이에 낄 때 더 고독하다. 생각하거나 일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지 항상 혼자다. 고독은 어떤 사람과 그의 동료 사이의 거리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학생이 우글거리는 교실에서도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은 사막의 수도승만큼이나 고독한 것이다.
인간들끼리의 교제는 대체로 너무 싸구려다. 너무 자주 만나기 때문에 서로에게 줄 어떤 새로운 가치를 획득할 시간이 없다.
우리는 너무 엉켜 살아서 서로에게 방해가 되기도 하고 서로에게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그 결과 우리는 서로에 대한 존경심을 잃어버린다. 조금 더 간격을 두고 만나도 중요하고 흉금을 터놓는 의사소통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다.
태양, 바람, 비, 여름, 겨울... 이러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의 순수함과 자애로움은 우리에게 건강과 환희를 안겨준다. 그것도 영원히!
6. 방문객들 中
내 집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또 하나는 우정을 위한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사교를 위한 것이다.
집들이 매우 크고 으리으리하기 때문에 거기 사는 사람들은 그 안에 기생하는 해충들처럼 보일 뿐이다.
우리가 말로 하지 않거나 말로 할 수 없지만 서로의 마음속을 알고 싶을 정도로 친밀한 교우관계를 정 원한다면, 침묵을 지켜야 할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서로의 목소리를 도저히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신체적인 거리를 두어야 한다.
어떤 방문객이 명함 대신 노란 호두나무 잎사귀에 적어놓고 간 스펜서의 시가 있는데, 나는 그것을 우리 오두막의 표어로 자랑스럽게 내걸겠다.
그곳에 이르러 그들은 작은 오두막을 채운다.
대접하는 사람도 없으니 대접을 구하지 않는다.
휴식이 그들의 만찬이며 모든 것이 그들의 뜻대로이다.
가장 고귀한 정신이 가장 큰 만족을 얻는다.
8. 마을 中
만약에 모든 사람이 당시 내가 생활했던 것처럼 소박하게 산다면 절도나 강도가 없어지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러한 사건들은 필요 이상의 재물을 소유한 사람들이 있는데 반하여 다른 사람들은 필요한 것도 갖지 못한 사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다. 포프가 번역한 호메로스의 책들은 곧 적절하게 배포될 것이다.
(호메로스 책을 잃어버리고 쓴 글)
9. 호수 中
허클베리와 월귤이라는 과일은 그것들을 사 먹는 사람이나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재배하는 사람에게는 그 진짜 맛을 선사하지 않는다. 그 진짜 맛을 알아보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인데 이 방법을 택하는 사람은 별반 없다. 허클베리의 참맛을 알고 싶으면 소 모는 소년이나 들꿩에게 물어보라. 허클베리를 손수 따보지 않은 사람이 그 맛을 안다고 여기는 것은 흔히 범하는 잘못된 생각이다.
호수는 풍경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표현이 풍부한 지형적 요소다. 그것은 대지의 눈이다. 그 눈을 들여다보는 자는 자기 본성의 깊이를 측정한다. 물가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눈 가장자리에 난 가는 속눈썹이며, 그 주위에 있는 울창한 숲과 낭떠러지들은 웃자란 눈썹이다.
호수처럼 아름답고 순수하며 동시에 그렇게 크기가 큰 것은 아마 이 지상에는 없을 것이다. 하늘의 물, 그것은 울타리가 필요없다. 수많은 민족들이 오고가지만 그것을 더럽히지는 못한다. 그것은 돌로 깰 수 없는 거울이다. 그 거울의 수은은 결코 닳아 없어지지 않으며, 그것의 도금은 자연이 맡아서 계속 수리해준다. 어떤 폭풍이나 먼지도 그 깨끗한 표면을 흐리게 할 수 없다. 호수의 거울에 나타난 모든 불순물은 아지랑이라는 태양의 솔, 즉 가벼운 마른걸레가 쓸어주고 털어주기 때문에 밑으로 가라앉아버린다. 이 호수의 거울에는 입김을 불어도 자국이 남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입김을 구름으로 만들어 하늘로 띄운다. 그러면 그 구룸은 호수의 가슴에 다시 제 모습을 비친다.
10. 베이커 농장 中
저녁이 되면 사람들은 얌전하게 집으로 돌아온다. 먼 곳이 아니라 자기 집에서 나는 소리가 모두 들리는 겨우 지척의 밭이나 길거리에서 돌아오는 것이다. 그들의 생명은 스스로 내쉰 숨을 다시 반복해서 호흡하기 때문에 시들고 있다. 그들의 그림자는 아침이건 저녁이건 그들의 발로 걸어간 거리보다 더 멀리까지 뻗어간다. 우리는 매일 먼 곳으로부터, 모험과 위험과 발견으로부터 새로운 경험과 성격을 얻어가지고 집에 돌아와야 한다.
11. 더 높은 법칙들 中
자기의 고상한 능력, 시적인 능력을 최고의 상태로 유지하기를 진정으로 열망하는 사람들은 각별히 육식을 삼가고 어떤 음식이든 많이 먹는 것을 피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나는 믿고 있다.
장차 인간에게 더욱 깨끗하고 건강에 좋은 식사만 하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인류의 은인으로 여겨질 것이다. 나의 식습관에 관계없이 인류가 점점 발전함에 따라 육식 습관을 결국 버리는 것이 인류의 운명임을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것은 야만족들이 비교적 개화된 민족들과 접촉하게 되고부터 서로를 잡아먹는 관슴을 버린 것만큼 확실하다.
공자는 "마음이 스스로를 거느리지 못하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대학》7장)고 말했다. 음식의 참된 맛을 아는 사람은 대식가가 될 수 없으며, 그 맛을 모르는 사람은 대식가가 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13. 난방 中
사람들이 진위를 가려내지도 않고 남들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이야기...
겨울에는 가끔 양지바른 곳으로 나가 콩밭에서 캐낸 나무 그루터기에 도끼질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밭을 갈 때 소를 몰던 사람이 예언한 대로 이 그루터기들은 나를 두 번 따뜻하게 해주었다. 한 번은 내가 그것들을 쪼개느라고 도끼질을 할 때, 또 한 번은 그것을 땔감으로 태웠을 때였다. 그러니까 어떤 연료도 그것보다 더 많은 열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14. 전에 살던 사람들과 겨울 방문객 中
나는 몇 차례의 눈보라를 유쾌하게 겪었다. 밖에서는 눈이 사납게 휘날리고 올빼미도 목소리를 죽였지만 나는 벽난로 앞에 앉아 즐거운 겨울밤을 보냈다. 몇 주일 동안 내가 숲을 산책하다가 만난 사람이라고는 이따금 숲의 나무를 베어 썰매로 마을까지 실어가는 사람들 말고 아무도 없었다.
15. 겨울 동물들 中
서로 제법 낯이 익자 드디어 어느 날 내가 양손에 한 아름 안고 가던 장작 위에 박새 한 마리가 겁없이 내려앉아 나뭇조각을 쪼았다. 전에도 내가 마을의 어떤 밭에서 김을 매고 있을 때 참새 한 마리가 내 어깨에 잠시 내려앉은 일이 있는데, 나에게는 어떤 훈장보다도 명예롭게 느껴졌었다. 다람쥐들 역시 나중에는 친숙해져서 가장 지름길이면 내 구두 위를 넘어가곤 했다.
17. 봄 中
호숫가 덤불 속에서 노래참새가 노래하는 소리가 들린다. 올릿, 올릿, 올릿... 칩, 칩, 칩, 체 차, 체 위스, 위스, 위스....
18. 맺는 말 中
너의 눈을 안으로 돌려라.
그러면 너의 마음속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천 개의 지역을 찾아낼 것이다.
그곳으로 여행하라.
그리하여 자기(自己) 우주지리학의 전문가가 되라
- 윌리엄 해빙튼의 시 <존경하는 친구, Ed. P. 나이트 경에게>에서 인용
왜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렇게 필사적인 일에 뛰어드는 것일까? 만약 자기 동료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다른 고수가 치는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는 해는 부자의 저택이나 마찬가지로 양로원 창에도 밝게 비친다. 봄이 오면 양로원 문 앞의 눈도 녹는다. 인생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그런 곳에 살더라도 마치 궁전에 사는 것처럼 만족한 마음과 유쾌한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샐비어 같은 약초를 가꾸듯 가난을 가꾸어라. 옷이든 친구들 새로운 대상을 얻으려고 고생하지 마라. 헌 것은 뒤집어서 다시 쓰고 옛 친구에레고 돌아가라. 사물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우리다.
가난이 당신을 빈둥거리는 인간으로 타락하는 것을 방지해줄 것이다. 물질적으로 낮은 수준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도 정신적으로 높은 차원의 생활을 하는 데서 잃는 것은 없다. 넘치는 부는 쓸데없이 넘쳐나는 것들밖에 살 수 없다. 영혼의 필수품을 사는 데는 돈이 필요 없다.
나는 내 본래의 몸가짐으로 돌아와야 마음이 편하다. 어떤 눈에 잘 띄는 장소에서 행렬에 참여하여 뽐내며 걸으며 과시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가능하면 우주의 창조자와 함께 걷고 싶다.
지금 숲의 지면 위에 깔린 솔잎들 사이로 벌레 한 마리가 기어가면서 저를 내려다보고 서 있는 나의 시야에서 몸을 숨기려고 애쓰고 있다. 이 벌레가 어째서 그런 비굴한 생각을 품고 자기의 은인이 될 수도 있고 벌레의 족속들에게 어떤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해줄지도 모르는 나에게서 자신의 머리를 감추려 하는가를 나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그리고 동시에 나라는 인간 곤충 위에서 내려다보고 서 있는 더 큰 은인이며 지성의 존재를 머리에 떠올린다.
아, '오늘날 철학 교수는 있어도 철학자(哲人)는 없다'는 흔한 말이 소로의 말인 줄은 이번에 월든을 읽으며 처음 알았다. 내가 자주 쓰는 말인데도 누가 한 말인지 몰랐는데.. 워낙 진리라 많은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이라..
북마크한 부분을 이곳에 옮겨적는 건 참 잘한 선택이다. 한 시간 이상 북마크한 부분을 찾아 옮기면서 다시 한 번 월든의 깊은 숲속에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다. 챕터마다 다 좋지만 특히 좋은 챕터는 고독과 맺는 말 부분. 어려웠던 부분은 독서였던 것 같다. 다음에 다시 읽으면 또 다른 부분을 볼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