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산책
엊그제 일요일, 바람쐬고 싶어 죽어가는 엄마랑 분위기 메이커 이모랑 셋이 4.19 국립묘지에 갔다 왔다.
요즘 아쉬운 건 진작에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것. 내가 운전한다면 엄마 아빠가 좀 숨통이 틔일텐데. 사실 엄마아파트에서 베란다로 나가기만 하면 고운 단풍이 한가득이라 늘 눈앞에 보이는데도 단풍보러 어딘가로 가고 싶어하는 엄마를 보면 내 성향이 이해가 된다.
아빠도 문밖 출입을 할 수 있을 때는 늘 나돌아 다니셨다. 온갖 공원으로 걷기 좋은 코스를 따라 하루도 빠짐없이 밖으로 밖으로. 엄마는 그러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런대로 좋은 환경에 살면서도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집에만 있으면 답답해서 미치거나 우울증 걸릴 거라면서. 그러나 이제는 혼자 멀리 갈 수가 없어 자식들이 모시고 나가야 하는데 다른 자식들은 다 바쁘고 그나마 시간을 낼 수 있는 나는 운전을 못한다. 작년, 올해 심각하게 면허를 딸까 고민을 했었는데 면허따서 부모님 바람쐬주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을까 싶어 거의 포기, 그러나 이럴 때마다 갈등이 생긴다.
예배 끝나고 4.19 근처 약초밥상집에서 점심을 먹고 4.19 국립묘지에 들어가 햇살바른 벤치에 앉아 해바라기를 했다. 꿈의 숲도 생각해보고 우이동 한정식집도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4.19가 제일 편하게 바람쐴만한 곳이다. 정문 앞 은행나무 밑에는 유난히 은행잎이 떨어져 쌓여 있어 곱고 햇볕받기 좋은 국립묘지 정원의 단풍들은 온통 빨갛게 예쁘다. 햇살 좋은데 기온은 조금 차가워서 해바라기 하기에도 적당한...
고운 단풍의 마지막 몸부림같은. 다음주 쯤에는 거의 떨어져 볼 게 없을 것 같다. 남산은 괜찮을까? 지지난주 남산은 단풍이 거의 안들어 초록단풍이었으니 지금쯤 좋을텐데. 엄마한테 다음주에는 남산에 가자고 했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아빠한테 미안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