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
1.
주중에는 티비보기가 힘들다. 월, 수, 금요일마다 별 일이 없으면 시청하던 프로그램을 이제는 하나도 볼 수가 없다. 프로그램이 끝날 즈음에 집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명견만리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보고 싶은 마음에 토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다시보기를 찾았더니 돈 천원을 내래. 이런.. 며칠 지나면 그냥 볼 수 있으니 다음에 보기로 했으나 일부러 일찍 일어났으니 다른 거라도 봐야지 싶어 찾아 본 프로그램이 KBS 파노라마에서 작년에 방영한 고독사 1, 2였다. 명견만리도, 고독사1, 2도 모두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라고 할까.
내가 예상한 것처럼 프로그램을 제작한 팀에서도 했던 예상, '노인의 고독사 비율이 많을 것이다' 하는 예측은 깨졌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전수조사를 했다는 제작팀의 보고서에 고독사 비율이 많은 것은 50대였다. 50대, 실패한 가장... 통계가 그렇다는 것이고 들여다보면 고독사는 빈부나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었다. 단촐한 가족구성, 긴 수명, 긴 수명에 따른 투병, 아무리 바깥 활동이 많은 사람이라도 결국 네트워크 단절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투병중 병원에서 죽는 것이 아니라면 발견 시간의 차이(하루이틀만이냐, 몇달, 심지어 몇년이냐)는 있겠지만 고독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갈 것이고 그렇다면 죽을 때까지 어떤 모양이든 사회활동을 해야 고독사 할 확률, 아니 늦게 발견될 확률이 적어질 것 같다.
2014년 기준 고독사하는 숫자가 하루 평균 5명 정도. 앞으로 우리 세대가 죽음 앞에 이를 때는 훨씬 많을 것이다. 당장 나를 보더라도 내가 정상적으로 수명을 누리고 죽는다면 그 순간에 남는 가족이라고는 별이 하나 뿐일텐데 별이가 늘 나를 지키고 있는 것도 아니고.. 병원에서 투병하다 죽거나 혼자서 고독사 하거나. 죽는 것은 어차피 혼자니까 그건 뭐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죽은 후에 빨리 발견이 되어 깨끗하게 정리되는 것이 관건일 것 같다. 프로그램에서 며칠, 몇달, 심지어 몇년 만에 발견된 주검은 정말 안타까웠다.
죽는 날까지 계속 활동을 해야 한다. 계속 활동할 꺼리를 미리 준비해야 하는데 봉사활동을 하면 좋을 것 같다. 건강과 힘이 허락하는 만큼, 일주일에 서너 번, 나이가 많아지면 조금씩 줄여서 두세 번, 한두 번이라도 규칙적으로 어딘가에 가고 무언가를 한다면 보람도 있고 적게나마 관계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나는 너무 미래에 대해 생각이 많은가 싶다. 현재를 잘 사는 것이 더 중요할텐데. 그렇다고 뭐 현재를 잘 못산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걸 탓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미래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준비도 했는데 일찍 죽으면? 하하.. 그것이 미래에 대해 생각도 준비도 없이 오래오래 사는 것보다는 낫겠지. 딱히 결론이 나는 것도 아니면서 생각만 많다.
2.
늦잠을 자고 일어난 별이아빠에게 고독사를 본 얘기를 했다. 50대 고독사가 제일 많은 것도 놀라움이었지만 남녀의 고독사 비율 차이가 다섯배에 달하는 것도 놀라움이었다.
평소에 별이에게 했던 말들 - 혼자 밥 먹고 혼자 시간 보내는 거에 익숙하면 겁날 게 없고 못할 게 없다, 뭐든 혼자 해라,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누가 누구를 도와주고 보살피는 게 아니라 각자 자기 할 일 자기가 하면서 같이 사는 거다, 요즘 누가 결혼했다고 밥을 해주고 해준 밥을 얻어먹을 수 있느냐 - 과 비슷한 말, 여자가 오래 산다고 하지만 그건 맘대로 안되는 거니 혼자서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고 혼자 밥해 먹고 세탁, 청소도 하고 제 몸 스스로 건사하면 혼자 산다고 급격하게 상황이나 건강이 나빠지지 않을 것이니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평소에도 이런 비슷한 얘기는 별이에게, 별이아빠에게 늘 했었다.
3.
청소를 하고 출출해서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짜파게티를 끓였다. 반쯤 먹고 난 후에야 아! 하는 깨달음. 깨닫고 인증 사진을 찍었다. -.-;;
<꼬질해서 줄여 올릴 수밖에 없는 사진>
별이가 있을 때도 가족끼리 함께 식사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았지만 별이도 없고 내가 매일 늦게 들어오는 상황이라 일주일에 식사를 같이 하는 경우는 주말에 한끼 정도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혼자 집에서 먹는 경우 짜파게티, 비빔면, 라면을 자주 먹는데 별이아빠는 주중 저녁을 생선구이, 매운탕, 보쌈김치찜 등과 같이 밥을 먹는다. 마트에서 생선, 고기도 직접 사오고 씻고 다듬어 보글보글 끓여서 먹는다. 별이아빠와 같이 먹을 때는 나도 밥을 먹지만 혼자 먹는 경우에는 영락없이 또 면종류..
혼자 밥해 먹고 청소하고 세탁하고 혼자 잘하라는 말은 내 스스로에게 해야 할 말이었다. 짜파게티를 끓여 냄비째 놓고 먹다가 깨달은 바! -.-;;
4.
베란다에는 흑마늘이 익어가고 있다.
별이아빠가 직장동료에게 들었다고 마늘 한 접을 사다가 전기보온밥솥으로 흑마늘로 만들었다. 15일(맞나?) 지난 후에 꺼내어 저렇게 펼쳐 말리는 중이고 지금 두번째 작품이 전기보온밥솥에서 익어가는 중이다. 처음엔 시험삼아 한 접을 했고 두번째인 지금 두 접을 하고 있다.
나는 혼자서도 잘 먹고 - 심지어 술까지도! - 잘 논다. 다만 먹는 음식에는 신경을 좀 써야겠다.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음식으로 먹어야지. 별이아빠를 본받아.
그리고 늙어서 봉사할 일을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