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일기

아침 묵상

little tree 2015. 9. 24. 14:50

 

 

 

 

이른 아침, 둘레길을 걸은 지가 두어 달이 지난 것 같다.

물병을 들고 나갈 수밖에 없던 더운 날을 지나 요즘은 선선하다 못해 쌀쌀하기까지 하다.

둘레길의 초입이 가장 어둡다. 시간이 이른데다가 나무가 울창하기도 해서이다. 아름드리 큰 나무는 아니나 적당히 자란 크고 작은 나무들이 엉성한듯 하면서도 하늘을 가린다. 마른 나뭇잎이 부서져 쌓여 땅은 폭신하고 공기는 상쾌하다. 엊그제 까지만 해도 6시에 집을 나서다가 인적도 드물고 어두워서 어제부터는 30분을 늦춰 나간다. 여기저기 도토리 떨어지고 알밤 떨어지는 소리가 투둑 투둑 나고 이른 아침에는 소리도 별로 없다. 숲길에는 지렁이가 여기저기 기어다니고 개똥이 가끔씩 보인다. 이 좋은 숲에서 아침을 여는 사람이 개똥을 버려두고 가다니..

 

아침마다 둘레길 초입에 들어서면서 기도를 한다.

"생명을 위해 생명을 밟지 않게 하시고 나를 위해 똥을 밟지 않게 하소서."

 

아침마다 아빠를 생각한다. 아빠가 아팠던 45일을 돌아본다. 그게 최선이었을까. 혹시, 다른 병원에 갔더라면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시간을 좀 더 연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설명듣지 못한 채 그렇게 떠나게 한 것이 후회스럽다. 막내를 뺀 가족들이 임종은 했지만 마지막 인사도 서로 나누지 못한 채 그렇게 허무하게.. 늘 죽음이 준비되었으나 삶에 대한 애착도 강했던 분인데, 다른 방법을 찾았더라면 적어도 6개월, 1년은 더 사시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요즘 많이 하는 이유는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도 여전히 암까페에 드나들며 많은 정보들을 알게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의 끝에서 나는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게 최선이었을거라고.

다니던 교회로 다시 돌아오는게 어떻겠냐고 아빠가 조용히 물어왔을 때 나는 변명도 없이 "돌아가지 않겠다"고 딱 잘라 말했다. 야멸차게. 그래야 했을까. 결국 아빠 떠난 후 주일마다 그 교회에 가게 됐으면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45일, 빵 하나만 사오라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 그래도 아빠는 끝까지 내가 피곤할까봐, 내가 고생한다고 걱정만 하셨다. 이제는 아빠가 원했던 것, 아빠가 좋아했던 것 아무것도 해드릴 수가 없다.

 

남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아빠가 우리를 향해 바라던 삶을 살아내는 것 그것 뿐이다. 나를 위한 아빠의 기도는 끊어졌지만 생전에 드리던 날 위한 아빠의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내가 살아내야 한다. 거기에 더해, 아빠가 드리던 기도의 분량을 내가 감당해야 한다.

 

"생명을 위해 생명을 밟지 않게 하시고 나를 위해 똥을 밟지 않게 하소서" 기도를 드리고 아빠를 생각하고 애도하고 아빠의 고통의 시간에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아빠가 드리던 기도의 분량 중 일부를 내가 감당한다.

 

남은 온 집안 가족들이 아빠의 소천을 겪으며 많이 생각하고 성숙해지기를, 아빠의 기도가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내 가족을 위해 아빠의 자녀를 위해 아빠의 형제를 위해 아빠가 드렸던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내 맘 깊이 사랑하는 친구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고 시간이 되는대로 나와 인연이 닿은 친구와 지인들을 위해, 암카페의 환우와 그 보호자를 위해 기도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다 흘러 둘레길 숲을 나오게 된다.

 

아침시간은 묵상하기 좋은 시간임에 틀림없다. 둘레길 비껴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불교 묵주, 천주교 묵주를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꽤 된다. 모두 이른 아침을 자연 속에서 마음과 몸을 단련하면서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슬퍼하고 애통해 하다가 스스로를 위로하고 기도하고 평안해지는 이 시간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