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회
어제밤 집에 들어가니 막내한테 편지가 한 통 와 있다. 기다리던 택배는 오지 않고...
까맣게 잊었는데 뜯어보니 엄마한테 보내는 편지였다.
그랬지. 섭섭하고 황당할 엄마한테 편지를 써서 나한테 보내라고 했었지. 인편으로 왔다고 하고 엄마한테 전해준다고. 글씨는 어째 그리 못쓰는고. -.-
별이가 외할머니랑 같이 지내겠다고 하는데 막내가 가져간 아파트 키를 택배로 받아야 별이가 들락거릴 수가 있을거라 열쇠가 온 다음에 가라고 했다. 글쎄, 별이가 엄마랑 같이 지낼 수 있을까. 엄마가 힘들기는 하겠지만 막내가 있을 때 그랬듯이 같이 밥먹을 수 있고 밤에 사람 있고 말할 사람 있는게 좋을지도 모르지. 모르겠다. 일단 열쇠가 오면 한 번 해보는 수밖에. 엄마도, 별이도, 나도 모두 편해야 계속할 수 있는 일이니.
9시 15분에 면회를 예약해놔서 꼭 2시간 전에 집에서 출발했다. 시간이 적당했다. 인덕원에서 택시가 없어서 버스를 탔는데 멀지도 않고 딱 좋다. 굳이 택시 탈 필요도 없겠다. 돌아오는 길도 버스타고 나와 전철탔다.
처음 연락받고 구치소에 면회갈 때 얼마나 기가 막혔던가. 구치소에 가는 것이 참 부끄러운 일 같고 오래살다보니 별 꼴을 다 보는구나 생각하면서 갔었는데. 가서 보니 면회오는 사람들의 면면이 나와 별다를 바가 없다는게 놀라웠다. 몇 번을 가도 그 길이 멀고 아득하더니 거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는지,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큰 도로에서 내려 구치소로 걸어가는 길이 막막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막내 얼굴은 별로 안좋아보였다. 전에는 그래도 괜찮아 보였는데. 그때는 어쨌든 희망이 있었고 지금은 희망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억울함과 분노 때문일까.
확인할 몇가지를 메모해서 들어갔다. 오랜 기간 떨어져 있으니 은행일이나 핸드폰 처리나 변호사 비용 등등.. 먼거리 자주 오지 말라 하지만 내가 갈 수 있으니 가는 거고, 나뿐 아니라 누구라도 갈만하니까 가는 거지. 안에 있는 사람은 그나마 10분 면회하러 누가 와줘야 바깥 바람을 쏘일 수 있을테니.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다음 면회예약을 하려고 인터넷에 접속해보니 내가 선호하는 1, 2차나 15분짜리 면회시간은 모두 예약불가다. 할 수 없이 월요일 9시 40분으로 예약했다. 넣어달라는 한한사전과 영영한사전을 오늘 못가져갔으니 가능하면 일찍 가져다 주는게 나을 것 같아서.
내가 읽던 월든을 가지고 갔다. 두꺼운 한한사전 못지 않게 큰 책. 내 힐링북이라면서 읽어보라고 했다. 시간 많을 때 다양한 분야의 책을 고루 읽으라고 했는데, 글쎄. 나같아도 내 관심분야만 읽게 되지 읽지 않던 분야는 읽게 되지 않던데.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처럼 읽고 싶은 것만 읽게 되어 있는 모양.
당일배송이라더니 주문했는데도 안와서 사전은 다음에 가지고 오겠다고 하니 그 사전을 외워가지고 나가야겠다고 웃으며 말한다. 제발 그래라. 뭐라도 남는게 있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