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헤어지고
1.
이번 금, 토를 마지막으로 실습이 끝난다.
이론은 즐거웠지만 병원 실습, 병동 실습은 그렇지는 않았다. 내 자리가 아니라는 불편함, 이론과 실제의 차이, 내가 취득하고자 하는 자격의 하찮음을 깨닫는 등 이유는 많다. 실습 시작은 두려움이었고 익숙해지니 귀찮음과 지겨움. 언제 끝이 나는가 학수고대를 했다. 갈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면 좀 달랐을지 모르나 실습생에게 성의를 들여 교육할만한 한가한 병원도 없고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그저 잡일 도와주는 정도. 운좋게 여러가지 배우는 경우도 있는 모양인데 그건 좀 작은 병원이나 가능하려나.
실습 때문에 주말이 기다려지지 않던 까마득한 시간들이 그래도 흘러갔다. 국방부 시계나 감옥 시계나 병원 시계나 째깍째깍 가긴 간다는 걸 알았다. 덕분에 이번 주말을 끝으로 해방이다. 주말에 쉴 수 없고 더 바빴던 날들도 이제 끝이다. 내년 봄 올 봄 이후의 내 상황과 환경이 변할 때까지.
같이 일하던 열댓명의 간호사들은 늘상 오고 가는 실습생들에게 관심을 둘 여유도 이유도 없다. 정들일 필요 없는 삭막한 관계. 게다가 온통 여자들만의 세상은 시기와 질투와 말 말 말들. 간호사들 만큼이나 나도 새로운 사람을 사귈 여유도 이유도 없어서 전화번호 하나 딴 관계도 없지만 그 지겨워 하던 기간의 끝자락에 오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간식 한 번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트에 갈 시간도 없지만 들고 갈 힘도 없어서 오늘 이*트 몰에서 미리 주문을 했다. 병원의 병동간호사실에서 받게. 맥스봉 소시지를 너무 좋아하는 간호사들, 그렇게 생긴 치즈도 좋아할 것 같고 나이트할 때 출출하면 생각이 날만한 컵라면 몇 박스...
아무도 내 이름 석자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이 많은 학생과 그 학생의 여유있어 보인다는 얼굴은 당분간 기억하겠지.
2.
학원을 일 여년 다니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 있다. 학원에서만 보고 눈인사만 하는 어린 친구들, 실습 병원에서 잠시 같이 일했던 어린 친구들, 4호선 같이 타고 다니는 나이 좀 있는 친구들. 이들 셋과 나, 넷이 학원이 끝난 후 전철을 같이 타고 오다보니 이제 좀 익숙해졌다. 그중 한 친구가 아무래도 시험 합격이 불안해 자꾸 공부하라고 채근을 한다. 넷이 같이 다니다가 하나 떨어지면 어떻게 해. 아직은 친구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계속 잘 지내면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라 생각을 했다.
그랬는데 결국 어제 한 친구가 사고를 쳤다. 舌話 舌禍 -.-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우리 말은 딱 맞는 말이다. 내가 들어보니 절대적으로 그 친구의 잘못이다. 자신이 원하는대로 뜻을 관철하지도 못했으면서 여러 사람 감정만 상하게 했다. 그리고 같이 다니는 친구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고. 나는 또 넷중 나이가 훨씬 많은 입장이라 한발 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나이가 비슷해 더 친한 친구에게까지 피해를 준...
일년짜리 관계, 게다가 한 두달 남은 관계, 안봐도 그만인 관계에 신경쓰고 싶지도 않고 피곤하지만 나도 관련이 있어서 짜증이.. 어제 전철에서 중간에 내려 시시비비를 가리고 변명을 들어 사태파악을 하고 상황이 어찌된 것인지 화내고 있는 원장에게 전화를 했다는데 원장은 화가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나같아도 화나지.
말을 참 재밌게 잘하는 친구인데 말많은 것은 늘 화를 부르는 것 같다. 자신의 유익을 취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왕따가 되게 생겼으니. 그래도 본인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듯. 얼마 남지도 않은 시간에 왕따시키지야 않겠지만 우리 마음에서는 이미 담을 쳤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이 나는 별로다. 남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적은 사람은 친구로 삼지 않는다. 말 많은 사람도 싫다. 여럿이 떼지어다니는 거, 내가 싫어하는데 지금 보니 이 상황이 딱 그 상황이다. 여럿이 떼지어다니다가 깨지는. 아이고 부끄러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