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일기

늪의 중앙에서 가장자리로...

little tree 2018. 12. 3. 10:14

 

ㅅㅁ에 출근한지 이제 두달 보름이 되었다.

늪에 빠진 것 같았던 시간들.

두 달이 지나니 겨우 눈 앞 사물이 보이는 느낌이 든다.

출근하면서 매일, 매순간 그만둘까 조금 버텨볼까 왔다갔다 하는 마음이었는데.

 

버틸 수 있을까. 두어 달 고생만 하다가 결국 그만두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럼 너무 억울하잖아.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매일 드는 생각들. 그랬는데 두달이 지나니 거짓말처럼 눈 앞이 조금은 밝아졌다.

내 건강이 견뎌줄까 했던 걱정은 너무나 감사하게도 잘 견디고 있고 둘레길이고 뭐고 퇴근하고 오면 쉬고 자기 바빴는데 딱 두달째인 지난달 19일부터 둘레길을 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둘레길도 듬성듬성 나가고 있다.

매일 나갈 수도 있는데 계절적인 이유로 게으름이...

 

아마, 한달 정도만 시계가 당겨졌더라면 가을 단풍을 보기 위해서라도 거의 매일 나갈 수 있었을텐데. 가을의 끝자락, 겨울의 초입에 둘레길을 나가게 되었고 둘레길은 지금 겨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나가면 즐거운 둘레길.

 

병원에서의 운동량은 어마어마하다. 하루에 찍히는 걸음수가 적게는 2만3천, 많게는 3만보 가까이 되고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오기라도 하면 3만보를 훌쩍 넘긴다. 그래서 체중은 지금 4키로 감량이 안정적이고 5키로 감량으 가고 있다.

어쩌면 당뇨전단계이고 체중이 증가일로에 있던 내게는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몸안의 기름이 빠지는 느낌. 배도 들어가서 옷이 다 헐렁해지고 벨트 구멍도 한 개 이상 줄었다. 다만, 노동이 운동은 아니라더니 근육량이 줄고 유연성이 줄어드는 걸 느낀다.

둘레길을 다시 나가기 시작한 건 그래서였다. 몸에 근육을 유지, 증가시키기 위해, 영혼의 근육을 더하기 위해.

조금 더 센 운동도 같이 하고 싶은데 글쎄, 내가 할 줄 아는 건 오직 걷는 것 뿐이라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은 늪의 중앙에서 주변부로 겨우 기어나온 느낌이다.

어떻게 헤쳐나왔는지도 모르겠고 앞으로도 어찌될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두 달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것도 훨씬.

마침 12월이 되었다.

몇 군데 송년모임도 있고 아직 잡히지 않은 약속도 잡아야 할 것 같은 계절.

한 해 바쁘다는 이유로 소홀했던 관계들에 관심을 갖고 인사를 나눌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시기에 늪에서 빠져나오게 되어 다행이고 감사하다.

 

이제는 전처럼 그만둘까 버텨볼까 갈등하지 않고 버텨볼 것이다.

현재처럼 건강에 이상이 생기지 않는 한.

 

가끔씩 이런 생각이 든다.

'나이트 없는게 어디야!!'

 

나이트 없지, 급여 최고지, 오프 많지...

 

그만두고 다시 새 일을 찾는다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는 별로 부담 안갖는다 쳐도 관공서 서류,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 경력증명서...

서류 떼는데만 하루 온종일 걸려도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그게 제일 싫고 또 싫은 건 연말정산할 때 복잡해지는 거.

 

그거 생각해서 잘 버텨야 한다.

55병상, 100병상, 750여 병상 다 다녀봐도 안바쁜데 없고 쉬운 일은 없더라.

병원은, 그냥 모두 바쁘다.

병원 밥 먹는 모든 사람이 다 바쁘다. 그냥 바쁜게 아니라 개바쁘다.

병원에 왔으니 바쁜 건 기본으로 깔고 가는거고 그렇담 체력만 되주면 그냥 다니는거다.

제일 더러운 병원, 병균이 제일 많은 병원에서 내가, 내 몸이 이겨낸다면 다른 건 가비얍게 묻고 가는거다.

 

두어달 보름만에, 이제 좀 늪의 가장자리로 나오게 되어 든 생각이다.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