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사, 그 후
엄마 아빠가 이사한지 한 달이 지나갔다.
지독하게 추웠던 날 이사한 덕에, 아니 추워서라기보다 도배장판하느라 기다린 덕에 화초는 대부분 동상을 입었고 버리는 거 아까워하는 노인들이라 온갖 지저분한 짐들이 도저히 정리가 되지 않게 쌓여 있었다. 아끼느라 쓰지도 않은 그릇들은 유행을 지나친지 오래고 딱 엄마가 내 나이 때 입던 원피스며 옷가지들까지도 그대로 있다. 그런 거 버리라 했더니 아깝다고 한 번 입고 버린다고 끝내 내놓지 않는다. 그 한 번 입는 걸 아마도 돌아가는 날까지 하지 못할 것이 뻔한데...
마트용 대형 쇼핑백 세 개에 그릇을 담아다가 버리고 엄마랑 싸움을 해가며 지저분한 것들을 대충 내버렸지만 그래도 내 맘에는 들지 않는다. 뭐, 내가 살 집도 아니고 보기 싫으면 안오면 되지!! 하고 엄마를 협박.. 하면서 그쯤에서 포기했다.
그릇을 버린대신 그만큼 그릇을 사드리려고 맘 먹었는데 생각해보니 새거 이쁜거 사줘야 아낀다고 어디다가 쳐박아두고 쓰지 않을 터, 내가 결혼할 때 혼수로 해온 도자기 세트를 모두 엄마네로 가지고 갔다. 엄마네는 큰집이라 그릇이 많이 필요한데 내가 결혼할 때 산 도자기 세트가 워낙 대가족용이라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듯하다. 머그잔도 내가 가진 세트에서 반씩 나눠주고 냉장고용 그릇은유리제품으로 한 세트 사서 드렸다. 아마도. 큰 잔치를 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덕분에 지금 우리집에는 그릇이라고는 접시 몇 개 뿐이다. 몇년 전만 해도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지만 그 모임이 깨진 후에는 집에서 식사하는 경우는 없으므로 그릇이 그닥 필요하지도 않다. 나중에 필요를 느끼게 되면 세트로 사지 말고 값을 더 주더라도 필요한 그릇을 필요한 개수만큼만 살 것이다. 엄마네 그릇을 보내고 나서 백화점에 가서 사고 싶은 그릇을 찜해 놓았다. 어찌나 예쁜지... 하하...
매 주말마다 엄마네 가서 정리정돈, 주방과 바깥주방을 필름으로 리폼해주고 전기공사, 화장실 손보기, 거실장 리폼 등등 아들이 할 법한 일을 모두 해줬다. 이제 엄마는 아들한테는 손톱만큼의 기대도 않고 오로지 사위가 해주기만을 바라고 있다. -.- 주말마다 목이 빠지게 우리를 기다린다.
그 사이에 주택금융공사에 엄마 아빠를 모시고 가서 아파트를 담보로 하는 주택금융연금에 들어드렸다. 어제 첫 연금이 나왔다고 전화가 왔고 이로써 이사와 정리, 연금문제가 모두 해결되었다.
이제, 두 분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서 주택금융공사에 크나큰 손해(ㅎㅎ)를 끼치는 것만 남았는데.. 지난 가을 겨울, 두 번의 이사를 하면서 엄마 아빠가 모두 쇠잔해지셨다. 특히 아빠는 때로는 혼자 바깥에 나다니기 힘들 정도로. 요즘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는데 노인들의 건강이 날마다 다른 것 같다. 부모님을 보면 부모님이 걱정이고 그 뒷편에 서 있는 내 자신이 걱정이다. 늙어서 오래 살게 되는 세대.. 건강하게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죽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누구나 그러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런 경우가 손꼽을 정도가 아닌가.
늙어갈수록 주변을 정리하고 단순하게 살면서 충격받지 않는 것, 큰 걱정거리 생기지 않는 것 그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러려면 욕심을 버려야겠지.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차분하게...
엄마 아빠가 쓸데없는 걱정을 내려놓고 평안히, 잔잔히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