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급호텔
연극 특급호텔
라본느 뮐러 작 (2001 국제 평화상, 반전연극상 수상)
극단 초인 주최 / 남산예술센터 / ★★★★★ / 홍수
2차 세계대전 당시 위안부 숫자는 약 20만명. 그중 80%가 한국 여성이고 대부분이 집에서 끌려나온 소녀들이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많은 여성들이 대량 학살되었고 살아남은 자 중에도 치욕을 견디지 못하고 미쳐버리거나 자살로 끝을 맺은 여성들도 많았다고 하고. 이런 역사를 외국인의 관점에서 쓴 작품이 바로 이 특급호텔이다. 외국인이므로 비교적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침착하고 냉정하게 그들의 아픔을 그려내었다.
옥동, 금순, 보배, 선희의 위안소에서의 처참한 생활은 연기로 보여지는 것보다 그들의 대화와 독백을 타고 관객에게 전해진다. 남편은 죽고 임신 중에 끌려온 옥동, 강한 의지의 금순은 정당방위를 위해 돌멩이를 모으고 마음이 고운 보배는 그 상황에서도 사랑을 한다. 엄마따라 같이 기차를 탔으나 엄마와 떨어진 선희는 이제 11살. 초경도 겪지 않은 어린아이이다. 그들의 입을 통해 증언하는 치욕스러운 그녀들의 경험, 우리의 역사는 객석에 앉아 듣기에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넋이 반쯤 나간듯 어눌한 옥동이의 말과 표정, 11살 선희의 천진하고 해맑은 얼굴 표정과 말투는 배우가 정말 11살 꼬마아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연기를 잘했다. 2미터도 훨씬 넘을 듯한 저 사진의 무대에 걸터앉아 있을 때는 내 가슴이 조마조마한데 아무렇지 않게 연기하는 배우들이 대단해 보였다. 나는 객석에 앉아 배우들이 높은 무대에 걸터앉아 있는 모습만 보고도 고소공포증을 느꼈고 무대를 빙빙 돌리면서 장면을 바꾸다보니 계속 무대가 천천히 돌아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는데.
2001 국제평화상, 반전연극상을 수상했다는 라본느 뮐러의 절제된 언어를 사용한 작품도 좋았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객석에 앉은 관객들은 쥐죽은듯 조용히 완전 몰입해 있었고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보였다. 슬픈 역사를 고발하는 이 연극을 통해 우리는 지울 수 없는 상처지만 잊지말아야 할 진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고 어떤 이들은 더 나은 무엇을 위해 행동하기로 결정짓는 한 발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