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108 - 토요일, 걷기
2011. 1. 8 토 흐리고 눈잠깐씩
1.
이장네 마을에서 걷기 벙개가 있는 날. 늦잠자려고 맘먹었는데 눈이 일찍 떠지는 바람에 전날 별이아빠가 사다놓은 일주일치 양식을 준비했다. 고구마 씻어서 두남비 쪄내고 사과, 토마토 씻어서 물기 닦고 양파 다듬어 씻어서 물기 닦고 닭가슴살 쪄내고... 혜숙이 문자 받고서야 눈이 온 걸 알았고 미끄러울까봐 등산화를 신고 나선 길..
2.
섬, 해질녘, 밀리, 신사부, 나 이렇게 다섯이 걷기 출발. 신사부만 남자이고 나를 뺀 여자들은 모두 화려한 싱글들.. 섬을 제외하고는 이제 겨우 두번째, 혹은 세번째 만난 사람들이다. 때로는 아무말 없이 때로는 이야기하면서 걷는 눈길은 변화가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나중에 혼자 걸으면 걸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자신이 없다. 그래도 뻔한 길, 가면 갈 수는 있을텐데... 다음에 꼭 혼자 가봐서 내 길을 만들어야겠다.
단단히 채비하고 떠났는데 걷다보니 덥다. 폴라폴리스 하나를 벗어 베낭에 넣고 걸으니 그런대로 괜찮았다. 두시간 반이 채 걸리지 않은 걷기 시간이 조금 더 걸었으면 싶어서 아쉬웠지만 눈길이라 약간 겁이 나긴 했다.
3.
성북동으로 내려와 칼국수 만두집에 가서 칼만두와 수육을 시켜 점심을 먹었는데 양이 어찌나 많은지 배가 빵빵하다. 예고했던 대로 밀리님이 점심값을 계산했다. 차를 마시러 간 곳이 일년 전 혜숙이가 점심사준 곳이었다. 인테리어도 아늑한 편은 아니고 음식값도 비싼데 그때처럼 여전히 사람은 바글바글 많다. 역시 되는 곳은 된다니까.
4.
혜화문에서 로터리쪽으로 지하실의 작은 소극장. 4시부터 공연인데 3시 45분이 되어서 극장에 들어갈 수 있을 때까지 밖에서 떨고 서 있어야 했다. 주변은 커피숍 하나 없는, 문화와는 거리가 먼 듯해 보이는 풍경이었다. 가난을 상징하는 소극장이라 공연을 보면서도 떨겠구나 예상했는데 지하 극장으로 내려서려니 훈훈한 공기가 느껴진다. 예상외로 재밌는 공연이었다.
2009년 성탄이브에 충무아트홀에서 본 뮤지컬 오디션을 생각나게 하는 공연. 밀리가 쏜 공연, 할인까페에서 저렴하게 구입했다고 하는데 저렴하게 구입한 것이 미안할 정도로 괜찮은 공연이었다. 무대도 그렇고 배우도 그렇고 스토리도 그렇고... 웃고 박수치며 인생을 생각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5.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해질녘이 저녁을 먹고 가자 한다. 마침 혜숙이에게 문자가 와서 혜숙이도 합류하기로 하고. 대학로 천년동안에 옆에 샤브샤브집. 밀리가 앞장을 선 곳이다. 걷기 중간에 간식먹고 점심먹고 차와 과자먹고 또다시 저녁을 먹자니 배가 불러 맛을 알 수 없을 지경. 한쪽에서 저녁은 회비를 걷자고 하는데 해질녘이 자기가 낸다고. 연 이틀, 남에게 얻어먹는 식사가 내 맘을 참 불편하게 만든다. 인선이는 너무 과해서, 밀리, 해질녘은 친하지 않은데 싶어서...
6.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은 세븐스프링에서 얻어온 생맥주 135밀리짜리. 아사이 두 잔을 시켜먹으면 미니 맥주를 준다고 해서 얻어온 것. 미니 맥주는 아까워서 못먹고 영우랑 먹고 남은 맥주 한 캔을 샤워까지 마치고 편하게 앉아 마셨다. 오랜만에 걸어서인가 길이 편치 않아서인가 고작 2시간 조금 더 걸었을 뿐인데 종아리가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