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34 - 처음처럼
처음처럼
신영복의 서화 에세이
신영복 글, 그림 / 이승혁, 장지숙 엮음 / 랜덤하우스
저자는 이미 공개된 글과 그림을 엮어서 다시 책으로 만든다는 것에 대해 내켜하지 않았지만 더불어숲 모임에서 설득하여 이 책이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군더더기 없는 투명함과 깊은 내공은 20여년을 학교(감옥)에서 연단한 결과일까.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난다"는 사실보다 더 따뜻한 위로가 없다는 저자, 나는 저자가 깊은 밤 같은 세상에 별처럼 빛나는 별같이 느껴진다. 이 책은 컬러로 꾸며져있는데다 여백도 많은데 글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여백 이상의 시간을 가지고 곱씹어보아야 할 어렵지 않으면서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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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잠재우는 거대한 콜로세움. 콜로세움은 맹수와 맹수, 사람과 맹수,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혈투를 벌이던 로마의 원형 경기장입니다. 이 경기장에서 혈투를 벌이다 죽어간 검투사들의 환영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우리의 마음을 암울하게 하는 것은 스탠드를 가득 메운 5만 관중의 환호 소리입니다. 인구 100만이던 로마에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의 콜로세움은 과연 그 영향력의 크기를 짐작케 합니다. 빵과 서커스와 혈투에 열광하던 이 거대한 공간을 우리는 무슨 이름으로 불러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더욱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은 로마 유적에 대한 관광객들의 그치지 않는 탄성입니다. 이러한 탄성이 바로 제국에 대한 예찬과 정복에 대한 동경을 재생산해내는 장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위용을 자랑하는 개선문은 어디엔가 만들어 놓은 초토(焦土)를 보여줍니다. 개선장군은 모름지기 상례(喪禮)로 맞이해야 한다는『노자(老子)』의 한구절이 생각합니다.
그리고 생각하게 됩니다. 로마제국은 다만 과거의 고대 제국일 뿐인가?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잠재우는 거대한 콜로세움은 없는가?
내용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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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하는 소주의 제호 글씨와 그림으로도 쓰인 처음처럼의 원작료 1억원은 현재 성공회대에서 전액 장학기금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