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별이의 입대 후 남편은..

little tree 2010. 7. 1. 13:20

1.

별이가 입대하던 날, 남편은 함께 가지 못했다. 회사에는 입대시키고 늦게나 출근한다고 보고까지 하고 나왔는데 별이가 혼자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그냥 출근하고 말았다. 그날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올 때, 늘 그랬듯이 별이는 집에 없었다. 다른 때도 친구만나고 늦게서야 집에 들어왔으므로 늘 그랬듯이. 그랬는데 별이가 집에 없다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집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군대갔다는 생각에 울컥해서는 울어다 한다. -.-

2.

"자대배치 전산추첨을 참관하러 가면 혹시 아들을 볼 수 있을지도 몰라" 하는 말에 남편은 회사에 출근을 미루고 함께 참관하러 갔다. 2천여 명 똑같은 놈들 중에서 알아보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정이와 나는 염려했지만 남편은 자기 아들은 자기가 바로 찾아낼 수 있을거라고 장담했다. 과연!! 그 똑같은 옷 입고 똑같이 모자쓴 똑같이 생긴넘들 2천여 명 중에서 금방 찾아냈다. 올레~!!

3.

아들이 입고 간 옷들이 소포로 배달되어 왔다. 소포 속에는 몇 줄 되지 않는 짧은 편지와 추가로 쓴 세 장의 포스트잇이 들어 있었는데 그 짧은 편지를 읽는 시간이 무진장 길었다.

4.

별이가 어릴 때는 사진을 많이 찍어주었다.그 사진을 모두 정리한 후로는 별이가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해서 사진이 많지도 않을 뿐 아니라 사는게 바빠져서 책상서랍 하나 가득 사진을 모아두기만 한 채 방치되어 있었는데 어느날 퇴근하고 늦게야 집에 들어가보니 남편이 그 사진을 모두 갈무리하고 있었다. 시간대 별로, 별이 사진 따로, 우리 사진 따로... 며칠씩 걸릴만큼 사진이 많은 것도 아닌데 아직도 사진정리는 끝나지 않았다. 남편은 사진을 분류하기만 할 뿐 앨범에 정리하지는 않는다. 남편은 사진정리를 하는 것이 아니었나보다. 똑같은 사진을 매일 밤마다 분류하는 것을 보면...

5.

어느날 늦으막히 퇴근을 해서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내 앞에 의자를 당겨서 마주 앉는다. "너, 초등동창 중에 군에 있는 친구 있댔지? 그 친구 계급이 뭐야? 어디에 있어? 연락할 수 있어?" 묻는다. "카페에 검색해보니 2008년에 대령되었는데, 그때는 대전에 있었고 그 후에 춘천으로 옮긴다는 얘기만 들었어. 만난 적도 통화한 적도 없어서 전화번호는 알지만 연락하기는 좀 그래. 그리고 그 친구한테 부탁한다고 그게 되겠어? 그냥 고생하게 되면 하는게 낫지 않을까?" "무슨 소리야. 별이 있는 사단에 아는 사람 있어서 전화라도 한 통 해주면 좋지. 그 정도 계급이면 충분할텐데. 아들일에 뭘 못하겠어. 연락좀 해봐." 나는 망설이고 남편은 저녁마다 집요하게 묻는다. 연락해봤느냐고.. -.-

6.

오래 전, 별이가 아주 갓난 아기였을 때 남편은 아기를 목욕시키는데 옆에서 심부름만 하고 아기를 만지지를 못했다. 왜 못만지느냐고 물으니 너무 작고 여려서 애처러워 못만지겠다고.. 별이가 백일쯤 된 후부터는 안아주고 놀아주고 목욕탕에도 데리고 가더니 어린시절 내내 교회에도 병원에도 놀이공원에도 유치원 재롱잔치에도 심지어 보신탕 집에도 어디든 별이를 데리고 다녔다. 덕분에 별이는 엄마없는 아이로 오해 받은 적도 있었고. 언젠가 우리 아들은 엄마만 둘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별이의 아빠가 엄마가 된 이유는 아마 그렇게 아이와 함께 한 시간이 많아서인 것 같다.

7.

표현을 하지 않을 뿐이지... 남편의 허전함이, 별이 보고지운 마음이 나보다 더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