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모처럼 가족여행 - 3

little tree 2010. 5. 24. 12:03



별이의 눈물

옆 팀은 우리가 먹기 시작하고 조금 있다가 다들 숙소로 올라가니 주변은 조용해지고 온통 개구리 울음소리만 가득하다. 산사춘 한 병, 소주 두 병을 800그람 목살을 구워 김치 200그람과 밥 한공기를 안주삼아 먹고 마셨다. 우리 부부는 산사춘을 마시고 별이가 마시는 소주가 양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내가 도와주었다.

"나 군대가면 엄마 뭐할꺼야?"

"너 군대가도 엄마 사는 건 똑같겠지. 집안은 더 쓸쓸해지겠지만.. 너 있어도 조용한데 너 없으면 오죽할까.."

"엄마, 나 군대가기 전에 여자친구 사귀지 말 걸 그랬어."

"왜, 그냥 흘러가는대로 가면 되는거 아냐? 만나게 되면 만나고 마음 변하면 할 수 없는 거고.."

"어떻게 그래. 끝내고 가야지."

그러면서 목소리에 눈물이 담긴다.

"그러게 왜 여자친구를 사귀어.. 남들은 아직도 여친 하나도 없다고 하드만. 지현이도 없대지, 엄마 우체국 친구 알지? 그집 찬모 형아도 아직 여자친구 없다는데 넌 두번 씩이나..너, 누구 닮았어?"

"엄마 닮았지."

옆에서 슬그머니 껴드는 남편,

"아빠 형제는 거의 다 중매결혼했어.넌 정말 누구 닮았냐? 아빠는 친구한테 여자 소개해달라고 해서 나가면 왜 그렇게 못생겼던지. 도망쳤다."

"ㅋㅋ 아빠, 그럼 엄마는 이뻤어?"

"별아, 외모랑 상관없이 좋아하면 이쁜거야."

"알아, 나도. 그 정도는.."

얘기하다보니 '엄마 닮았지'라고 얘기한 것이 지가 엄마를 닮아서 여친을 잘 사귄다는 얘기가 아니고 지금 여친이 나를 닮았다는 얘기였다. 고속버스안에서 별이 핸드폰 화면에 들어있는 여친 사진을 보고 '코가 별이랑 닮았네' 하고 잠깐 생각이 스쳤었는데 정말 여친이 나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이랑 나랑 닮았으니. 엄마랑 얘기하면서도 머리속으로 여친 생각하다가 누구닮았냐는 질문의 의도도 파악못하고 딴소리 해대는 별이넘... 아들넘의 풋사랑이 마음아프다.

세월의 두께가 덕지덕지 앉은 내 마음도 아픈데 여린 아들넘의 마음이야 오죽할까. 아들넘이 살짝 우는 바람에 나도 따라 엉엉 울 뻔했다.

 

날 꼭 닮은 별이

이넘이 누굴 닮았을꼬... 하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는데 요즘은 날 꼭 닮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걱정하게 만드는 경제관념도 제 아비와는 전혀 다른 것이 나와 더 가깝고 몰입하는 것이나 사람사이에 관계를 맺는 것도 제 아비는 그렇지 않다. 생긴 것도 성격도 나를 꼭 닮았고 술 마시고 눈물을 보이는 것까지 나를 닮았다. 갈수록 날 많이 닮았다는 것을 느끼면서 별이에게 보이는 거슬리는 부분에 대해서 이해도 되고 미안한 마음도 든다. 별이 마음이 좀 강했으면, 풋사랑에 너무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별이아빠의 속마음

별이에게 하는 별이 아빠의 너무나 때이른 충고.

"결혼하면 좋은 기간은 5년 뿐이야. 5년이 지나면 그런 감정은 다 사라지고 그저 의무감, 책임감으로 사는거야.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여자 만나지 말고 널 좋아해주는 여자를 만나, 그게 편해. 네가 좋아하는 여자랑 결혼하면 평생 네가 맞추고 살아야 되는데 너 좋다는 여자랑 살면 여자가 너한테 많이 맞춰주거든."

아직 미성년인(11월생이므로) 아들넘에게 하는 아빠의 충고라니.. 참.. -.- 그 말 속에 자신의 상황, 자신의 생각이 그대로 담겨져 있는 거 아닌가. 음.. 5년만에 마음이 변하셨군.. 어쩐지, 늘 팔짱을 끼거나 손잡고 다니는 내게 어느날 (꽤 오래전 어느날) 그랬었다. 손 좀 안잡고 다녔으면 좋겠다고. 그 말이 참 많이 서운해서 그 이후로는 손 절대!! 안잡는다. 내가 스킨십을 안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별이아빠가 스킨십을 안좋아하는 사람이어서 어쩔 수 없이 내가 그렇게 적응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최근에 했었는데 역시.. 맞는 모양이다.

또 하나는 본인께서 더 많이 나를 좋아해서 결혼을 했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내게 맞추고 산다고 생각한다는 것.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별이아빠는 직장에서 만났는데 입사는 내가 먼저였다. 다른 모든 직원들이 다 볼 수 있는 유리박스 안에서 근무하는 전산실 직원이 대략 예닐곱 명이었는데 나랑 별이아빠는 서로 등지고 앉은 자리. 첫인상은 왜소해서 별로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 보였고 언제부터인지 좋아졌다. 보기에는 곰같아도 여우같은 나, 절대로 먼저 말하거나 눈치채게 할 수는 없지. 눈빛으로 텔레파시를 보내서 그가 먼저 내게 데이트신청하게 하고 먼저 고백하게 하고 청혼하게 했다. ㅋㅋ

내가 자기를 먼저 좋아했던 사실을 별이아빠는 지금도 전~혀 모르고 있고 자기가 먼저, 자기가 더 많이 좋아해서 한 결혼이라 평생을 맞춰주면서 산다는 억울한 감정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설마, 별이아빠 여기 들어와 이 글 읽지는 않겠지?)

별이아빠 같은 사람은 별로 없다.결혼해서 그렇게 많이 바뀐 사람도 없을 것 같다. 매사에 철없는 내게 어떻게 그렇게 잘 할 수 있을까, 왜 그럴까 생각이 들 정도로 잘한다.

잘한다는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대체로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웬만하면 나 하고싶은대로 하게 해주고 온갖 집안일 귀찮은 일 도와주는...내가 별이아빠에게 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이 잘하는데 그래서 나는 그 이유가 그가 나보다 더 성숙한 사람이어서 이거나 신앙적으로 나보다 깊은 경지에 이른 사람이어서 일 것이라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편안한 마음으로 내게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별이와 함께 이야기하는 중에 별이아빠가 잘해주면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었다. 남남이 같이 사는 것이 그런거겠지. 아무리 오랜 세월을 살아왔대도... 어쨌든 별이아빠는 내게 고마운 사람이다.

 

함께 있어서 편안한 잠자리

한 방에서 다같이 잠든 것이 얼마만이던가. 아들넘이 혼자 잔 것이 중학교 3학년 때부터이니 꽤 오랜만이다. 별이아빠는 거실바닥에 이부자리를 펴고 별이와 내가 침대에 누웠다. 잠자리가 바뀌었어도 가족이 함께 있으니편하고 잠도 잘 온다.

자다가 목이 말라 일어나는 별이넘 때문에 잠이 깨었는데 마치 겨울바람소리 같은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서울의 밤과는 달리 온통 캄캄하다. 가끔씩 지나가는 자동차 불빛만 느껴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