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218 - 후지야에서
2009. 12. 18 금 맑음
계속 최저기온 기록갱신중인 날들.
오늘이 제일 추운 날인데 집에서부터 지하철까지 걸었더니 얼굴이 다 얼얼하다.
어제 약속 때문에 별이 아빠가 회사에 차를 두고 나오는 바람에 제일 추운날 걸었다.
어제는 추워서 꼼지락거리다가 5시가 되어서야 근처 훼밀리마트에 가서 문화상품권을 다섯 장 사고
마침 요즘 뽑아 놓은 사진이 있어서 사진이랑 같이 작고 예쁜쇼핑백에 담아
열어보지 못하게 테이프로 봉했다.
내내 가지고 있다가우리집 앞에 내려줄 때에 건네주면서
전에 찍은 사진인데 문화상품권 한 장 넣었다고 지현이 영화나 한 편 보러가게 주라고 했더니
지현이 엄마가 "지현아빠가 가끔 맛있는거 사도 돼. 자기 돈으로 사는 것도 아닌데..." 그런다.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못준거라고 말하고 내렸다.
아, 나는 어떻게 해도 그들에게 부담을 주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여섯시 사십분 쯤 사장님이랑 사무실을 나섰다.
너무 늦는게 아닌가 싶은데다가 날도 추워서 얼마나 빨리 걸었던지.
마침 별이 아빠도 도착했다는 전화가 와서 로비에서 만나 들어갔더니
M부부가 벌써 와 있었다. 우리도 좀 일찍 도착한건데..
지현이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더니 잘 지내고 있다면서
등위는 좀 올랐는데 쓸 곳이 없다고 한다.
작년에 경희대 합격한 건 등록도 안했었는데 거기도 못가게 생겼다고 걱정을 한다.
M을 닮았으면 체질이 좋을텐데 엄마를 닮아 약한 것이 재수에는 치명타였는데 그것까지 계산에 넣지 못한 거였다.
튼튼한 M은 골골거리는 거 이해조차 잘 못하는 편이고.
자기가 병동에서 뛰쳐나가지 않고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거라나. ㅎㅎ
지현엄마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한 해, 아니 두 해 동안 너무너무 힘들었다고 고통스러웠다고.
사고 싶은 것도 못사고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조마조마하게 두 해를 살았더니 너무나 힘들다고
그래서 이번에는 학과 학교 가리지 말고 무조건 들어가서 그 다음에 생각하라고 했단다.
보통의 엄마들처럼 뒷바라지하는 게 아니니 지치고 탈진할 만도 하다.
게다가 M이 임원이 된 후로는 주말에도 집에 없을 때가 많았고 집안일도 별로 안도와줬다고 푸념도 하고..
M에게 골프는 많이 늘었느냐고 물었더니 남보다는 빠르다고.
워낙 운동신경도 있고 승부욕이 있는 사람이니 그럴 거라 짐작했었다.
얼마 전 교회에서 사랑의 연탄배달하는 날 지현이랑엄마랑 둘이 다녀와서 둘 다 몸살이 다 났다는데
지현이가 어려운 사람들 사는 모습보고 와서 느낀 점이 많은 것 같다고 좋은 기회였다고 한다.
엄마한테 자기는 그 상황이면 못살 것 같다고, 다 포기할 것 같다고 하더라나.
지현이 엄마의 지현이 걱정에 뭐라 말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는 상황보다 앞으로 결정되는 상황은 훨씬 나아진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안다.
지현이가 원하는 학교, 학과에 꼭 되었으면 좋겠다.
지현이 엄마도 이제 아이를 위해서도자신을 위해서도 과잉보호에서 벗어나야 하고...
적당한 경제적 여유와 스스로 파출부, 머슴이라 말하는 자상한 남편,
가족만이 자신을 살게 한다고 말하며 적당히 공부 잘하는아들을 둔 지현이 엄마야 말로 만족도 99%의 삶을 살 것 같은데...
뭐, 그렇겠지. 그런데 요즘 긴장의 날들을 보내다보니 잠시 불행한 느낌을 갖는 거겠지.
결정이 될 때까지는계속 혼란스럽겠지만 잘 될거다.
잘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