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벼룩이 간을 내먹은 날

little tree 2009. 7. 15. 13:14

어제는크게 바쁜 것도 없었는데 퇴근이 좀 늦었다.

아들넘도 여친만나고 왔다는데 나보다 조금 일찍 집에 도착했나보다.

밥을 먹자니 차리기도 귀찮고 반찬도 맘에 안들었겠지.

아들넘은 늘 반찬 투정이다. 그놈 입에는 맛있는 게 없다.

어쩌다가 집에 엄마 아빠나 손님이 와서 같이 먹게 되면 평소 먹는그 음식을 맛있다고 하면서..

아마도 혼자 먹는 밥이 맛이 없을 것이다.

자기 손으로 차리는 것도 맛이 없겠지.

자식을돌보고 잘 키우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고 자식에 올인하는 좋은 엄마들을 볼 때마다

부끄럽기도 하고 아들넘한테 많이 미안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를 못한다.

불량엄마다. 자신만 아는 이기주의자 불량엄마.

집에 들어갔더니 아홉시 반이 가까웠는데 아들넘이 밖에 나가서 먹자고 한다.

"네가 쏘는거야?" 철없는 엄마.

"응~" 아들의 대답을 듣고 따라나섰다.

먹고 싶었다는 원할머니보쌈집에 가서 보쌈과 소주를 시켰다.

소주시키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기는 아들넘.

내가 한 잔, ★이 아빠가 두 잔, 나머지는 ★이..



요즘 ★이 아빠가 술을 마신다.

밖에서는 먹지 않지만 아들넘 덕에 집에서 자주 술판이 벌어지는데 그럴 때마다 한 두 잔씩 마시기 시작했다.

이왕 끊었는데 먹지 말지... 생각이 들지만 강요할 수는 없다.

아들이 커버리니 가족문화가 완전히 성인문화가 된 듯하다. 술문화..

나는 이 변화가 적응이 안되고 싫다.

돌이켜 보면 직장생활 초년에 나도 직장 선배따라다니면서 술 마신 것 같은데.

술이 좋아서가 아니라 함께 어울리는 그 분위기가 좋아서.

그자리 뿐이었고 그 외에는 술을 마시는 일이 없었는데

아들넘이 그런건지, 지금 시대가 그런건지 도처에 술이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하긴 뭐, 티비를 켜도 온통 연예인들 술마시고 노는 얘기만 하니까

그것을 보는 아이들에게 술문화가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이런 문화속에서

아들넘이 살아내야 하는 건전하고 성숙한 삶,

한차원 높은 삶을 살기가 얼마나 힘들 것인가.

아들넘은 아무 생각 없는 듯이 보인다.

나도 머리속만 복잡할 뿐 멘토의 역할을 해 주지 못한다.

★이에게 좋은 스승, 좋은 선배, 좋은 친구를 만나는 복이 있기를...

특별히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복이 있기를...

보쌈과 소주 한 병을 다 비우고 나오면서 아들넘이 카운터에서 계산을 했다.

카드를 낸다. 직불카드란다.

★이 아빠는 "벼룩이 간을 내먹냐. 네가 내라~" 하는데

나는 아들넘에게 "잘 먹었어~" 하고 말했다.

보쌈집 주인이 "아드님이신가봐요." 하며 웃는다.

남이 보기에도 흐뭇한 광경이었나보다.

아이들이 많은게 다복하다지만 단촐한 곳에는 또 기동성있는재미가 있다.

말 한마디에 쉽게 의견이 일치하고 바로 행동으로 나갈 수 있는...

가끔 쓸쓸하고 적막하기도 하지만 간편하고 홀가분해서 좋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