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버리기

little tree 2009. 6. 2. 12:40

한군데 오래 사는게 지겨웠다.

부모님은 초등 2학년 때 미아6동으로 이사 온 후 그 집에서 계속 살았다.

언제였던가 마당이 넓은 집으로 한 번 이사를했는데 거기도 미아6동.

넓지도 않은 집안은 버리는 게 뭔지 모르셨던 부모님 덕에 온통 살림살이로 가득차 있었다.

가끔씩 이사를 다녀줘야 짐도 정리하고 지저분한 것도 버릴텐데

그러지 못했으니 결혼 전 우리집은 살림에 치였고 청소도 하나마나...ㅎㅎ

한군데에 오래 사는 것도 지겨웠고 살림살이 가득차서 답답한 집안도 지겨웠다.

결혼을 하면서 장만했던 집을 2년만에 팔고 이사를 한 후부터 나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듯 이사를 다녔다.

이년, 혹은 사년 정도 살고나면 또 새로운 집으로..

집을 샀던 곳은 부천이었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집을 찾으니 그 돈으로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우연인지, 우리가 원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새로 짓는 집으로 입주했던 것이 두 번이었고

나머지도 대부분 깨끗하고 지금 사는 집보다는 같거나 조금 넓은 집이었다.

몇 년에 한번씩 집을 바꿔가며 새롭게 시작하는 재미가

차차 피곤함과 귀찮음으로 느껴지고이사하는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즈음

집을 사려고 보니 우리가 그동안 살았던 곳보다 작은 곳으로 가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도 이사를 다녀서 살림은 깨끗한 편이었지만

살던 곳보다 더 작은 곳으로 가려니 그동안 편하게 사용하던 가구며 살림들이 짐처럼 느껴졌다.

남 주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면서 살림을 줄이고

결혼 후 한 번도 정리하지 않았던 책들도 정리를 해서 오래된 책들과 필요없는 책들을 모두 버렸다.

그리고 한 번 더 이사를 해서 지금 이곳으로 들어올 때는 정말 군더더기 없는 단촐한 살림이 되었다.

이제는 집 평수를 늘리기는 어려울 것같고 더 넓은 집에 살기 위해서는 짐을 더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몇년 전에 피천득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언론에 공개된 그의 책꽂이를 보고 놀랐었다.

소유하고 있는 책이 몇권 되지 않는 그의 책꽂이.

나도 그렇게 꼭 필요한 책만 가지고 살아야지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요즘 그 생각이 다시 들어서, 아니 또 이사하기로 결정하고 주변정리를 하게 되었다.

결혼할 때 혼수로 해왔던 장식장 두 개를

이곳으로 이사오면서 남편이 이 집의 색상과 맞추려고 페인트 칠을 했었다.

이방 저방에 있던 낡은 책장을 모두 버리고 그 장식장에 겹겹이 책을넣어두었는데

이번에 이사할 때는 그 장식장 두 개를 버리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그곳에 있는 책들을 모두 처분하기로 맘먹고 엊그제 토요일 일을 시작하려고 보니

참.. 책이 아까운거라.

대부분 딱 한 번씩 읽었던 책들인데..

고민하다가 검색을 해보니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전화를 해서 물어보니 오래된 책은 안되고 2000년 이후에 발간된 책만 받는다고 한다.

아, 이것참. 난감할세..

그렇담 저 책들의 판권을 다 펴봐야 된다는 얘기 아닌가.

에이, 귀찮아. 그냥 몽땅 버렷~! 하고

일단 두 번 이상 읽은 책들과 한 번 읽었지만 다음에 또 읽어야지 생각했던 책들,

간직하고 싶은 책들을 한쪽에 분리를 해서 놓고 보니

남은 책들이 너무 많아 차마 그냥 버리지는 못하겠는거라.

대충 책 읽은 기억이랑 제목을 보고 찍어서 2000년 이후의 책들을 골라 택배로 보낼 박스에 담고

나머지는 끈으로 들을 수 있는 만큼씩 묶어 내 놓았다.

한동안 대하드라마를 읽었는데 그아까운 책들을 2000년 이전에 나온 책이라고 받아주지 않는다니...

책값 아낀다고 도서관에 다니며 대출해서 본적도 있었다.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내 책보다 더 좋은 책은 찾기 어려울만큼너무나 낡아 있던데..

그것에 비하면 너무나 깨끗한 내 책을 눈물을 머금고 아파트 재활용 창고에 내려놓았다.

누군가가 보고 가져갔으면 좋으련만.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일이었지만 모두 버리고 나니 많이 섭섭하다.

앞으로는 책을 사서 읽더라도 절대로 모아두지 말아야지.

이제 시간나는대로 주방 살림도 정리하고 옷장도 정리해야겠다.

쓰지 않는 것, 욕심 때문에 가지고 있는 것들을 모두 정리해야지.

내 집안에 내가 모르는 물건은 하나도 없도록..

그러고 나면 꼭 필요한 것들만 남아서 살아가는게 훨씬 가벼워질 것 같다.

욕심 부리지 말고 앞으로는 꼭 사야할 것만사야지.

사람이 죽도록 일해서 죽도록 사들이고 죽도록 내다버린다고 하더니 그 말이 딱 맞는 말이다.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하자. 꼭 필요한 것만 소유하자.

욕심을 버리자. 물욕이든 다른 어떤 욕망이든 지적 허영심이든.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도 나 떠난 자리 정리할 것이 별로 없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