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6 - 남자를 묻는다
남자를 묻는다
이경자 에세이
이경자의 다른 글 : 절반의 실패, 혼자 눈뜨는 아침, 사랑과 상처, 정은 늙지도 않아, 꼽추네 사랑
2005년 문예진흥원 우수문학도서
이경자의 글은 절반의 실패, 혼자 눈뜨는 아침이 나올 때 잠깐 스치는 관심을 갖긴 했지만 정작 읽어보진 못했었다.
그의 책이라 또 문예진흥원이 추천하는 우수문학도서라고 해서 도서관에서 이 책을 집어들었는데 내가 잠깐 관심을 가졌던 만큼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난 아마도 이런 종류의 책에 감동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작가의 감정에, 억울함에 공감이 잘 안되니까.
가난하지만 아들과 딸 차별을 별로 하지 않았던 할머니와 부모님 덕분에 난 특별히 억울한 감정 없이 살아왔다. 작년에 구십대 중반의 일기로 돌아가신 친정 친할머니는 본인 자신이 시대에 맞지 않게 귀하게 자라셨고 결혼해서는 다섯 자녀를 두었는데 그 중에 딸이 하나 뿐이어서 그러셨는지 아들 딸 구별이 없으셨다. 어쩌면 손주들 가운데도 딸이 귀해서, 아쉬울 게 없어서였는지도 모르겠지만.
부모님은 가난해서 나를 상고에 보내셨는데 연년생인 남동생도 덕수상고를 보냈다. 남자 형제를 위해서 희생하는 흔한 사연이 내게는 없었다. 게다가 엄마는 두 남동생에게는 헌 밥을 주고 내게는 새 밥을 주셨다. 누릉밥도 동생들을 줬다. 내가 누릉밥을 좋아했는데도.. 이유는 딸은 시집가서 그런 거 죽도록 먹는다고.. ㅎㅎ (그렇게 생각해서 키웠는데 참, 냉정한 불효녀라, 내가..)
지금도 우리 사는 사회는 여전히 남녀차별이 존재하고 나 자신도 알게 모르게 많은 차별을 당하면서 살아왔을테고 또 지금도, 앞으로도 그렇게 살겠지만 내 작은 공간에서는 별로 느끼지 못하므로 그냥 그런 생각을 별로 못하고 산다.
이 책에서 인상이 남는 부분은 모소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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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소족은 결혼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이가 차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이를 낳고 그 아이는 어머니와 함께 산다. 그래서 모소족의 아들은 영원히 어머니와 사는 아들이며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러 여인의 집으로 가는 애인이고 연인의 집에서는 영원히 환영받는 손님이다. 아이는 당연히 자기를 낳은 어머니의 성을 이어받는다. 모소족 여성들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책임지지만 아무렇게나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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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모소족에 위기가 오는데 첫 번째는 마오쩌뚱의 민족 대통합정책 - 일부일처제 요구 - 이고 두 번째는 자본주의의 물결이다. 소수민족을 관광산업육성에 포함시킨 정책 때문에 모소족도 관광상품화되었고 이로 인해 생긴 부의 축적과 소비의 즐거움에 눈뜨게 된다. 잉여자본을 놓고 권력이, 유혹이 생겨나고 그것은 대대로 모계사회를 이어 내려온 모소족에게는 커다란 위기로 다가온다.이 책이 발간된지 꽤 된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 모소족은, 모계사회는 어떻게 되었을까. 모소족 모계사회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요즘 시대상은 또다른 새로운 모계사회로 나아가는 것 같다. 유혹에 약한 아들들에 비해서 능력있는 딸들, 그 딸을 지원하는 엄마들, 엄마들은 딸의 아이까지 키우며 전폭적으로 딸을 지원한다. 아직 호적은 그렇지 않지만 심정적으로는 이미 모계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나도 딸을 하나 얻어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