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tle tree 2008. 8. 25. 14:22

 

지난 화요일 퇴근길, 충무로 지하철역에서 Y를 만났다.

20여년 전 독립해서 일을 시작했던 그때, 나는 모 기획사에서 일을 하청 받아서 했었는데 그 기획사의 거래처였던 제일생명 홍보실 직원이었다. 사내보를 작업하는 기간에는 늘 우리 사무실에 나와 있었고 나이가 비슷한 기획사 직원들과도 무척 친하게 지냈다. 나도 일을 같이 하다보니 가끔 끼게 되었고 개인적으로 친하지는 않았지만 집을 새로 짓고 집들이하는 그 사람의 집에 함께 초대받아 가기도 했다. 구파발, 연신내 근방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그의 아내인 선희씨와도 처음 인사를 나누었다. 그렇게 꼭 한 해 정도 함께 일한 후에 내가 그 기획사와 거래를 그만두게 되었고 Y와도 다시 만날 일이 없었다.

세월이 한참 흘러 몇 년 전 우리 사무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시간에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긴가민가 싶어서 아는 척은 못하고 자꾸만 그쪽으로 눈길이 갔다. 나보다 두 세 살 많을 거라 짐작을 하는데 머리가 거의 백발인 거다. 세월도 많이 지났고 나이와 머리색이 안맞아서 갸우뚱 갸우뚱∼ 계속 관찰하다보니 Y가 맞는 것 같긴 했는데 곧 그 일행이 식사를 마치고 나갔으므로 직접 확인하진 못했다.

그 후로 얼마 후에 또 그 식당에서 보게 되어서 이번에는 아는 척을 했는데 Y가 맞았다. 여전히 그 직장에 다니고 여전히 홍보쪽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으며 자기 회사 일하는 거래처가 충무로에 있어서 자주 나온다고 하였다. 내 명함을 달라는데 명함이 없어서 주지 못했고 그도 명함을 지니고 있지 않아 그냥 헤어졌다.

그리고 세월이 몇 년 쯤 흐른 뒤에 출근길 4호선 지하철에서 또 만났다. 인사하고 안부를 물으니 중계동으로 이사왔단다. 옛날 얘기 몇마디 나누고 헤어졌는데 그 후에도 우연히 사무실 근처와 지하철에서 한 두 번 더 만났었고 간단한 인사만 나누었다.

그러다가 지난 화요일 퇴근길에 충무로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그 사람을 만났다.

"우연히 만나는 게 쉽지 않은데 우리는 우연히, 꽤 자주 만나네요"
"인연인가 보죠."

인사를 나누고 전철에 타서 나란히 앉아 이야기했다. 내 명함을 달라기에 없다고 했더니 자기 명함을 주었다. 회사는 여의도에 있는데 거의 충무로에서 생활한다고 했다. 일 오래했는데 지겹지 않냐고 묻는다. 자기는 그 직장에서 25년 되었는데 지겹다고.. ㅎㅎ 주로 일 얘기 하면서 오다가, 내릴 곳에 가까이 와서 내가 말했다.

"다음에 우리가 또 우연히 만나면 그때는 맥주 한 잔 하지요." 하고

"우연은 뭘, 일부러 만들면 되는거 아닌가요?" Y가 대답했다.

"아뇨, 정말 우연히 또 만났을 때.." 맘 속으로만 말했다.

다음에 우연히 만나면 맥주 한 잔 하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아, 정말 우리 까페 어느 친구 말처럼 나는 사람을 잘 꼬시는 걸까? ㅎㅎ

그런데 다음에 우연히 만났을 때 오늘 했던 약속을 기억할 수 있을까? 과연, 그것이 문제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