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내가 송천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그러니까 초등 2학년 이전 어린시절에 우리집에는 두 종류의 책이 있었던 것 같다.
한 종류는 미군부대에 다니던 아빠한테 필요했을 영어책과 (책에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류의 지문이 있고 그 밑에는 한글로 해석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 밑에 있는 한글 부분을 재밌게 읽었다.) 다른 한 종류는 기독교 교육이라는 월간잡지였다.
아빠는 교회에서 어른 예배 때는 풍금 반주를 했었고(그 당시에는 피아노가 거의 없었다.) 어린이, 청소년, 청년 등 학생예배 때는 교사를 했었다. 지금도 아빠가 학생들 앞에서 율동을 하며 노래를 가르치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아빠는 기독교교육에 관해 알아야 했을 거고 그 책을 정기구독했던 것 같다. 책은 대개 재미가 없었지만 재밌는 예화 부분이 조금씩 있어서 그 부분을 읽었다.
아빠가 내게 책을 처음 사준 것은 초등 3학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퇴근길에 사셨는지 포장지에 싼 책을 주셨는데 제목은 장발장.. 이것이 아빠가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준 책이다. 아빠는 처음 책을 사다 준 이후로 가끔씩 책을 사다 주자고 마음 먹었을지도 모르지만 곧 아빠의 상황이 그럴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그 후 나는 책읽는 재미를 알지 못하고 커버렸다. 우리집에는 내가 읽을만한 책이 없었으므로..
다시 책을 조금씩 읽게 된 건 중고등시절을 지나고 벙어리도 삼년이면 말문이 트인다는 출판인쇄계통에 몸을 담게 된 이후..
20대와 30대 때는 과로사를 염려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만큼 일에 치여 살았다. 가끔씩 24살, 이른 나이에 내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혼자 살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할 때가 많다. 그만큼 일에 묻혀서 살았다는 거지.
그리고 그 일이라는 게 월간지, 소설, 대학교재, 전문서적 등등 책으로 나가는 모든 것들을 입력하고 편집하는 거였는데 지금은 입력한 데이터를 받아서 편집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그 내용을 잘 파악하지 못하지만 그 당시에는 모든 것들을 눈으로 읽어서 직접 입력해야 했다. 머리 속에 남건 남지 않건 눈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는 정말 많은 양이었고 일을 하면서 다양한 방면을 어쩔 수 없이 읽게 되었다. 일을 하면 눈을 혹사하게 되는데 이상하게 쉴 때도 눈을 쉬게 하지 못하고 뭔가 읽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증상이 나타나는 거였다. 그래서 인생의 가장 바쁜 20초반부터 30후반까지 일로 바쁘고, 뭔가를 읽느라 바빴다. 많지는 않지만 내가 살면서 읽은 책들은 거의 이시기에 읽은 거였다. 좀더 일찍 읽었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ㅎㅎ
그러다가 40이 넘어가면서 남들 보기에는 하찮은 운동, 내게는 획기적인 삶의 변화, 걷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움직이는 거 싫어하는 사람이 운동을 시작하니 자연히 피곤했고 시간도 많이 뺏겼다. 읽기는 점점 줄어가고 걷기는 점점 늘어가는 상황이 되었다. 요즘은 정말 한 달에 한 권 읽기도 쉽지 않다..=-.-= 또 이젠 책을 읽어도 그 당시에만 감동이 있을 뿐이고 책을 덮고 일주일 후면 제목 밖에는 기억나지 않는다...ㅠㅠ
그래서 40이 지나면서 책을 읽는 모습도 달라졌다. 새로운 책을 읽기도 하지만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때가 많아졌다. 박경리 소설 토지는 두 번 읽었고 내가 가지고 있는 헬렌 니어링이 쓴 책은 서너번은 읽은 것 같다. 읽을 때 괜찮았다고 생각했던 책들은 대부분 한 번씩 다시 읽었고 그중에 제일 여러번 읽은 책은 포리스터 카터의 자전적 소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그 감동,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데 표현이 안된다. 대여섯번은 족히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거다.
처음엔 작은나무와 할아버지 할머니를 이어서 파인빌리와 윌로존, 와인씨, 그리고 리핏, 모드, 블루보이까지. 위스키 만드는법, 깨어나는 산, 늑대별, 영혼의 무게.. 자연과 함께 사는 방법, 사람을 키우는 방법.
아, 일찍 이 책을 읽었더라면 아들넘을 좀더 자유롭게 키울 수 있었을텐데.. 아파트 현관 앞에서 산을 보면서 나는 이 책을 생각할 때가 많다. 내가 읽었던 책들 중에서 으뜸으로 꼽는 책. 얼만큼 좋았냐면 선물용으로만 열 권도 넘게 산 것 같다. 내가 감동받은 책이 남에게 똑같은 감동을 주는 거 아닌 줄 알지만 그래도 그 감동을 같이 느끼고 싶은 마음에..^^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데 쓸데없는 말들이 길어졌다. 핵심만 간결하게 쓰지 못하고 긴긴 길을 돌아다니다가 대충 글을 끝내는 게 요즘 내 주특기가 되어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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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까페에 올린 글.. 2008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