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늙어감

little tree 2011. 10. 7. 10:25

엊그제 엄마가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하기까지 얼마나 속을 끓이고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아마 이번 일 때문에 엄마는 더 늙었을 것이다. 작년 여름에 엄마의 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했으니까 아파트 건축 기간을 대충 따져보면 지금부터 사년 전쯤에 이사를 했을텐데 그때는 내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사가 끝난 다음에 가서 정리하는 거 좀 도와주고 손봐줄 데 손봐준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부모님이 힘은 들었지만 이사하는데 지장이 없을만큼 심신이 건강했다는 얘긴데 이번 이사에는 하나에서 끝까지 모두 내가, 혹은 동생이 봐줘야만 했다. 이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결정하는 것부터 이사짐센터와 계약하는 거며, 당일 전세금 오가는 거와 소소한 생활요금, 아파트 관리비 문제까지.

몇년 전, 아파트 평수를 선택할 때만 해도 40평대 아파트가 전망이 좋았다. 프리미엄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걸 팔아서 소형 아파트를 사면 더 많이 남을 거라는 생각에 부모님은 44평 아파트를 신청했는데 상황이 달라져서 맘대로 팔지 못했다. 작년 여름에 입주해야 했지만 평수가 넓어서 -게다가 돈도 부족했고 - 입주하지 않고 세를 준 것이 결정적으로 잘못된 판단이었다. 세입자가 들어 있으니 팔기는 더 힘들어지고 세입자는 때때로 대출보증을 서달라느니 나가겠다고 빼달라느니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괴로움을 안겨주었고 결국 나간다고 하기에 팔기에 편하려면 엄마가 입주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서 모자라는 돈에 대한 이자부담과 관리비 부담 때문에 고민하는 엄마를 떠밀어 입주하게 했다.

사실, 이번에도 다시 전세를 준다면 경기는 더 나빠질테고 부모님은 더 늙어갈테고 팔아서 소형아파트로 바꾸기에는 더 요원해질 것이 뻔히 보이는 상황이라. 부모님이 앞으로라도 좀 속편하게 사시려면 입주해서 살면서 팔아야 하는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거기에 들어가는 이자부담 등 금전적 부담은 따지고 보면 그다지 심각할 게 아닌데 남의 돈이라고는 땡전 한 푼 써보지 않은 부모님 입장에서는 기가막힐 노릇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어쨌든 이자나가는 거 아까워도 입주해서 팔고 나면 정신적으로 편안해지고 몸도 편안해지니까 섭섭하더라도 싸게, 아주 싸게 팔라고 신신당부를 했고 입주를 결정했다. 나도 살아보지 못한 44평 새 아파트. 역시 좋았다. 구조가 못하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말도 있더만 그건 그런데 사는 사람이 비교해서 하는 말이고 내 입장에서는 아주 좋기만 하다. 구석구석에 수납공간이 어찌나 많은지. 지저분하고 쓰지 않는 쓸데없는 거 모두 버리고 이사하라고 하는 내 말 듣지 않고 이것저것 온갖 잡다한 화분과 항아리까지 끌고 이사들어왔는데도 구석구석에 다 들어가고 나니 눈에 보이지도 않고 팔고나면 25평 아파트로 갈 생각이라 지저분한 가구를 버리고 왔더니 집안이 이사가는, 혹은 이사 오는 집처럼 휑하다. 짐정리가 대충 끝나고 청소를 하고 나니 기분이 좋은게 아니라 갑갑하게 느껴진다.

이제까지는 이자부담에만 신경이 쓰였는데 이사를 와놓고 보니 하루하루 살아갈 일이 걱정이 되는 거라. 이 넓은 집을 어떻게 청소하면서 살지, 홈오토메이션이니 머니 해가면서 노인들이 사용하기에는 어렵고 복잡한 설비와 구조들... 살다보면 금방 적응된다고 걱정할 거 없다고 이야기하면서도 내 스스로도 걱정을 떨칠 수가 없다. 손님이 왔을 때 문을 열어주는 방법, 현관문을 여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고 동현관키까지 핸드폰에 매달아 드리고 한번에 모두 정리하려고 하지도 말고 한번에 모두 알려고 하지도 말라면서 돌아왔다.

하루종일 같이 있으면서 옆에서 보니 부모님의 판단력이 많이 느리고 흐려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부모님과 살 생각이 없고 부모님도 자식과 살 생각이 없는데 정말 두 분이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염려와 부담이 심각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