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나들이
삼일 연휴라니 놀토가 아니라도 차가 많을 터. 점심을 먹으러 가는 거지만 아침 9시 30분쯤 출발했다. 날씨는 청명하고 기온은 꽤 쌀쌀해 정신까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김포 쪽에서는 새로 난 길을 따라 가다가 늘 들르는 주유소 편의점에서 잠깐 쉬었다. 짧은 여행이지만 나름 여행의 맛은 다 누려보고 싶은 마음에 휴게소 기분을 내면서 커피와 아이비를 먹었다. 캔커피가 맛이 있을 리가 없지만 따뜻함이 좋았다.
11시 반쯤 되어서 바닷가에 있는 식당에 도착해보니 한쪽 옆에 할머니가 포도를 열 댓 상자 쌓아놓고 팔고 계신다. 일만오천원. 전날 저녁, 아파트 알뜰장 전단지에 보니 만오천원이라고 들어왔던데 같은 값이면 할머니 포도를 팔아주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내켜하지 않는 P님을 꼬드겨 강매를 한다. 맛은 어디나 비슷하니까 여기서 사셔! 이러면서...
강화도에 갈 때마다 가는 식당에 들어가 전어무침, 전어구이와 꽃게탕을 시키고 그래도 한잔 해야지? 하면서 메뉴를 보니 대잎소리라는 술이 있는데 보아하니 지역 소주 같다. 지역에 오면 지역 소주를 마셔줘야지.. 하면서 한 병을 시켰다.
한 잔씩 따라 드리고 나도 한 잔 받고. 맛을 보니 향도 있고 맛도 있고 순하다. 라벨을 찾아보니 역시! 11도라. 술이 남을까봐 걱정스러운 P님이 주인아줌마를 불러 한 잔을 따라주는 바람에 술이 부족했다. 쬐끔. 대나무 형상을 따서 만든 술병도 이쁘고 맛도 좋은 것이 한 병 사오고 싶은 마음마저 들 정도였다.
이어서 전어무침과 전어구이가 나오고 구이 옆에 서비스로 조기새끼 몇 마리도 함께 구워서 나왔다. 무침은, 보기에 때깔도 그렇고 맛도 그렇고 지난번 이장네 전어벙개 때 무침의 맛과 비교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구이도 좀 빡빡하게 구워진 느낌이 있고. 그러나 시간들이고 기름들여서 교외로 나가 먹는 맛은 음식 맛 말고도 또다른 즐거움이 있는 것이니. 마지막에 꽃게탕을 먹었는데 꽃게도 많이 넣어주고 맛도 괜찮았다. 먹은 양이 너무 많아서 밥은 한 그릇을 가지고 셋이 나누어 먹었다.
먹고 난 후 강화도를 나오는 길에 먹은 것 소화도 시키고 바람도 쐴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책이나 할까 했는데 P님이 밤을 주으러 가자고 한다. 밤을 주워도 담을 것이 없는데... 트렁크 안쪽에서 검정 비닐 봉다리를 하나 찾아내 들고 야산길을 따라 갔다. 땅바닥에 떨어진 밤송이를 보고야 밤나무가 있는 곳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밤송이가 작았고 그나마 벌어지지도 않았다. 별이아빠 말로는 거름을 줘야 밤송이가 커지는데 길가 혹은 야산에 있는 나무라 관리가 안되어 작단다. 관리가 되는 밤나무라면 우리가 주워가지도 못하겠지.
어쨌든 두 남자는 길에 떨어진 작대기를 집어들고 길가의 풀섶을 헤치며 밤송이가 떨어져 튕겨나온 밤알을 찾고 나는 그 뒤에서 비닐봉다리를 들고 따라 간다. 가끔씩 밤알이 튕겨져 나가지 않은 밤송이를 발로 차 주면 까서 알맹이를 챙기는 건 내 몫이다. 수확한 밤톨은 내 엄지손톱만한 게 제일 클 정도로 크기가 작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다시 주차장으로 오니 거북하도록 부른 배는 어느 정도 소화가 되었다. 화장실 들러 볼일을 보고 손도 씻고 차를 타려고 보니 차 대놓은 윗편에 밤나무가 있는 거라. 그곳을 올라가 보더니 둘러본 밤나무 중 제일 나은 것 같다고 또 막대기를 들고 풀섶을 헤친다. 겉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풀섶에는 가시나무가 많았고 결국 피를 보고서야 밤줍기를 접었다.
강화도 들녘은 추수한 곳이 가끔 있기는 해도 대체로 추수하기 전. 아직은 푸른 빛이 남아 있는 누런 들판이다.
논에는 메뚜기들이 이리저리 튀어다닌다. 별이아빠 말로는 농약을 별로 치지 않은 논이란다. 농약을 치면 메뚜기가 없다고. 메뚜기 잡아서 볶아 먹겠다는 별이아빠를 말려서 그냥 돌아왔다. 징그러울 것 같아...
오는길에 강화 인삼막걸리를 두 병 사서 한 병은 P님 드리고 한 병은 우리 갖고.
집에 와서 벌레먹은 밤을 골라내고 씻어서 쩌냈다. 먹어보니 작기는 해도 달다. 토종밤, 산밤이라 그런가보다. 밤 줍느라고 피까지 본 P님 몫으로 비닐봉지에 담아놓았다. 안그러면 뒷탈이 있을 것 같아서. 하하..
바람 잘 쐬고 잘 먹고 왔는데 참.. 허허롭다는 느낌이었다. 아이가 없이 늙어가는 어른 셋의 소풍은 좀 쓸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