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논술샘과 점심

little tree 2012. 8. 27. 16:01

 

지난 목요일인가, 논술샘 전화가 왔었다. 의외로 다른 샘들은 빼고 둘이서만 점심먹자고 했다. 속을 알 수는 없지만 다같이 만날 때마다 화제가 어긋나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서가 아닐까 추측했었다.

금요일에는, 병원 볼일 보고 다섯시가 다 되어서 출근을 했더니 택배가 와 있었다. 논술샘 출판사에서 펴낸 당신의 별자리 한 권과 동화책 두 권, 이웃집 발명가라는 연극 티켓 한장이 들어 있었다. 당신의 별자리는 페이스북에서 보고나서 사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딱히 급할 게 없어서 안샀는데 선물로 받게 되었다. 정가가 39,000원. 후덜덜한 가격에 작심하고 사려고 했더라도 실제 주문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늘 약속시간보다 일찍 11시가 좀 넘어서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 논술샘이 내게 올 때마다 그랬듯이 딱히 용건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냥 점심이나 먹고 차나 마시자는 거였다. 책 잘 받았다고 했더니 서양에서는 집집마다 성경 옆에 한 권씩 소장하는 그런 책이라고 한다. 별자리 공부를 한참 하시더니 그게 별자리 책을 출판한 계기가 되었나보다.

샘은 다시 살이 많이 쪘고 나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젊은 아이들 외모를 하고 있었다. 음.... 부잣집 철없는 막내 아들 같은. 내가 처음 샘을 만나서 느겼던 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데 원래 그런 성향이었는지 바뀌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니, 내가 처음에 잘못 본 것이 맞을 것 같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나이가 정지되어 버린, 다른 별에 사는 왕자 같다고 할까. 그렇게 사는 모습이 시간이 지날수록 대단해 보인다.

함께 점심을 먹고 번잡하지 않은 커피전문점을 찾아 커피를 한 잔씩 하고 별이에 대한 이야기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병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암은 치료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암세포는 생겼다가 커지고 커졌다가 줄어들고 그러다가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인데 의술이 발달해서 발견을 하게 되고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 인해 충격을 받고, 절망하고, 나빠지고, 치료하면서 악화되는 거라는 얘기를 한다. 죽을 때는 대부분 암으로 죽는 거라면서.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얘기인 것 같긴 하다. 나이 많으면 암을 치료하는 것보다는 관리하면서 함께 가는 것이 오히려 수를 누리는 방법이라는 얘기는 흔히 하는 얘기니까. 그러나 그건 나이가 많을 경우, 세포의 순환이 늦을 경우, 예상 수명이 많이 남지 않았을 경우의 얘기이고 나처럼 죽기에는 젊은 사람이라면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치료받지 않겠다고 결단하는 게 쉽겠냐고 했더니 그래도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논술샘은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같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내가 제대로 설득당한다면 또 모를까. 설득당해서, 나도 그렇게 판단해서 치료하지 않기로 결단하고 치료하지 않았더라도 그 선택을 죽을 때까지 후회하지 않고 지낼 수 있을까? 그 선택을 후회하고 다시 치료받고자 결정했을 때, 그 시기가 치료하기에 너무 늦어버렸다면 얼마나 처절한 후회를 하게 될까.

논술샘과 헤어져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오늘 어쩌다가 이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을까, 무슨 의미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