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아빠, 첫 출근
별이아빠가 퇴직하고 쉰지 만 두 달이 지났다. 나나 별이아빠나 안달복달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나는 피곤해서, 별이아빠는 부담이 되어서 슬슬 신경이 예민해지고 있던 차에 어제 처음 출근을 했다. 새벽 5시 10분이 조금 넘어서 집에서 출발했다. 5시 30분이 첫차이므로 20분에 나가도 될텐데 처음이라 여유있게 나가는 모양이었다.
일을 같이 하자고 하는 사람을 나는 신뢰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너무나 긍정적, 희망적으로 말해서였다. 지금 잘되는게 어딨어? 잘 된다고 말하면 모두 사기꾼, 아님 뻥!! 이라고 여기는게 내 생각이라 보는 시각이 너무 희망적인 그 사람, 그 회사를 신뢰하지 않았고 또 하나 여태까지 별이아빠가 해 본 일도, 잘 할 것 같은 일도 아니어서 기대하지 않았다. 조경은 건축만큼 힘든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야외에서 일해야 하는 노동. 며칠 출근하면 힘에 부쳐 나가 떨어질 거라는 게 내 생각인데 별이아빠는 굳이 그 일을 하겠다고 한다. 나이에 상관없이 할 수 있는 일이라 늦도록 일할 수 있고 지금 할 수 있는 다른 일에 비해 보수도 좋고 앞으로도 더 좋아진다는 것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있을만한 일을 해야 하는 거라며 계속 다른 쪽을 찾아보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내게 일단 한 번 해보고 안될 것 같으면 그때 방향을 바꿀테니 좀 두고보라고 했다.
그래서 어제 새벽에 출근을 했고 출근하는 걸 보고 다시 침대에 누워 비몽사몽 한 시간을 더 있었는데 그때 여러가지를 꿈을 꿨다. 그중 하나는 별이아빠가 다시 돌아온 것. 사람들과 성향 안맞아서 못하겠다고 돌아와서는 아파트 복도 난간 위에 앉아 있었는데 조금 있다가 보니 사람이 없어졌다. 떨어졌는지 어쨌는지 어수선하게 꿈은 끝났다.
그리고 일어나 씻고 출근을 했는데 태풍전야라더니 정말 하늘 높고 이불빨래 말리기에 딱 좋은 화창하고 쨍쨍한 날씨, 거기에 덥기까지 했다. 그래서였는지 머리를 시원하게 자르고 싶어서 일찍 퇴근해서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자르고 집에 들어갔더니 별이아빠가 와서 샤워하고 나오던 참이었다. 일곱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아, 그런데 팔이며 얼굴이 완전히 깜둥이가 된 거다. 그러게.. 노가다를 아무나 하나. 미리 등산배낭에 수건이랑 모자랑 장갑이랑 챙겨 가기는 했는데 긴팔과 자외선차단제는 생각도 못한거라. 맞다!! 공사장 인부도, 거리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한여름이라도 긴팔이었다!!는 것이 그제야 든 생각. 장갑을 챙긴 덕에 손만 햐얘. -.-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원래 피부가 흰 편이라 어지간해서는 빨개지다가 다시 하얘지는데 저렇게 종일 쨍쨍한 햇볕에 탄 것은 다시 하얘질 것 같지 않고 또 하루하고 마는 일이 아니라면 회복되기는 틀린 것일게다. 왜 선크림이랑 긴 옷을 안 챙겼냐고 말했지만 나도 생각지 못한 거니 뭐 누가 누구한테 뭐라 할 게재도 아니다. 그게 경력이, 경험이 필요한 것인데 생전 처음 그런 일을 하러 나가다 보니 더운 것만 생각해서 고급 소재의 등산티랑 고급 골프모자만 챙겨가지고 간 것이지. 노가다 하러 가면서 소풍 채비로 나간 것이야. 하하. 웃어도 눈물이 나올라 해.. -.-
생겨먹기를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이 아닌지라 뭐든 챙겨주는 법이 없었는데 감자를 깎아 갈아서 얼굴과 팔에 붙여주었다. 어릴적 외가에 갔을 때 이모가 해수욕장에서 화상을 입고 돌아와 감자를 갈아 붙였던 기억을 해내고. 소파에 누으라 하고 얼굴이랑 팔에 감자 갈은 것을 처덕 처덕 올려놓았더니 감자 국물이 소파 위로 줄줄줄~ 하하하하.. 얼굴과 팔이 화끈화끈하다더니 소파에서 잠이 들었고 그제서야 핸드폰으로 감자팩을 검색해보니 나처럼 하는게 아닌 거라. 밀가루랑 꿀을 좀 섞어야 하고 거즈를 얼굴에 올린 후에 감자 갈은 것을 올려놓아야 한단다.
보통 팩은 15~20분 정도 하는 거라는데 잠이 든 바람에 1시간이나 붙이고 있었다. 효과가 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결혼해서 처음으로 베푼 친절이니 그거이 가상해서 효과가 있지 않을까. 다시 샤워를 하고 출근 둘째날 입을 옷을 뭘 챙겨야 하나 고민하더니 박스형 긴팔 남방을 챙겨나온다. 나도 내 방에서 자외선 차단제를 하나 챙겨나와서 아침먹고 바르고 점심먹고 바르고 수시로 바르라며 줬다.
오늘 같은 날 일을 처음 시작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필 드물게 화창하고 햇볕 쨍쨍한 날 처음 시작하는 바람에 하룻만에 깜둥이가 되어 버린 별이아빠. 그닥 힘들지는 않다고 하지만 여태까지 힘든 일을 해본 적 없고 원래 단단한 체질이 아니어서 쉽지는 않을 거다. 어제도 초저녁에는 괜찮다고 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힘든 기색이 보였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몸이 적응한다고는 하지만 일단 두고 볼 일.
태풍이 전국을 강타하는 오늘 새벽에도 별이아빠는 일을 나섰다. 별이가 제 아빠가 일하고 돌아온 거 보고 마음이 안좋은 모양이더니 오늘 아침에도 출근한 걸 보고 언짢아 한다. 철없는 거 같고 표현하지 않지만 그래도 속은 깊은 모양이라.
별이아빠는 지금 분당쪽에서 일한다고 하는데 자꾸 전화를 한다. 분당쪽은 가로수가 뽑혀 나뒹구는데 집은 어떤지 걱정된다고. 창에 붙인 신문지에 물을 뿌려서 제대로 해 놓고 출근했느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