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야곱신부의 편지

little tree 2012. 10. 10. 10:08

 

 

 

 

핀란드 영화이다. 등장인물 엑스트라 셋 포함해서 여섯 명. 야곱신부와 레일라, 그리고 편지를 전해주는 우체부가 나온다.

 

종신형을 살다가 가석방된 레일라는 봉사명령에 따라 앞을 보지 못하는 늙은 신부 야곱에게 간다. 그가 할 일은 야곱 앞으로 온 편지를 읽어주고 답장을 대신 써 주는 것. 야곱신부에게는 인생의 의미가 되는 일이지만 레일라는 그 일의 가치를 전혀 동감하지 못한다. 레일라가 일부러 편지를 빼돌리기도 했지만 결국은 야곱 신부에게 오는 편지는 끊어지고 야곱 신부는 아무 할 일이 없음에 좌절한다. 그때 야곱 신부가 깨닫고 했던 말,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하나님이 자신을 지탱하게 해준 일이었다고 고백하는 말이 인상에 남는다.

 

영화는, 배경이 너무 남루해서 마음이 불편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늙은 신부, 그가 기거하는 사제관은 비가 오면 비가 새고, 춥고 쓸쓸해 보이는 마루바닥은 삐그덕삐그덕 소리를 낸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그 영화가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했는가가 궁금했다. 하도 남루해서. 영화가 끝나고 이야기나누는 시간에 물어봤더니 2009년에 만들어진 영화고 그 즈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 청렴도 최고, 교육 최고, IT 강국으로 기억하는 핀란드는 경제수준도 높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찾아보니 1인당 GDP가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4만불을 넘는다. 그걸 찾아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물론, 영화의 배경이 특별한 경우일지는 모르지만.

 

이야기 나누기 시간에 들은 얘기로 핀란드는 루터교가 국교인 나라이고 야곱신부는 공무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퇴직한 공무원이 되겠지. 화면은 건조하고 핀란드의 기후를 짐작할 수 있게 춥고 불편했지만 자연은 아름다웠고 이야기하는 바는 높은 가치였다.

 

내게 영화는 어려웠다. 영화 중반을 넘어갈 때까지 무엇을 말하는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다가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을 걸어닫은 레일라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에야 의문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어린 아기 때부터 엄마의 폭력 앞에서 자신을 보호해준 언니, 그 언니가 남편의 폭행으로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다가 어느 순간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형부를 죽였고 종신형을 받았다. 레일라는 형을 사는 동안 언니에게 오는 연락도 받지 않았고 출소를 해서도 언니에게 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언니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위해 야곱 신부에게 끊이지 않고 동생을 보고 싶다고, 동생의 소식만이라도 듣고 싶다고 편지를 보냈고 야곱 신부가 탄원을 해서 레일라는 가석방이 되었던 것이다. 레일라가 자신의 지나온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털어놓자 야곱 신부는 언니의 이야기를 레일라에게 해주고 쓰러져 죽는다.

 

국교가 루터교인 핀란드에서 만들어진 영화라 예술영화라고 하기보다는 종교영화에 확실히 더 가깝다. 나는 이 영화가 두 개의 주제를 이야기한다고 느꼈다. 위로와 용서. 야곱 신부는 자신에게 보내오는 사람들의 여러가지 사연을 들어주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위로한다. 그러나 야곱 신부가 나중에 얘기했듯이 그 일은 자신이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그 일을 통해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는 것이기도 했다. 그 일을 할 수 없었을 때 야곱 신부는 낙심했고 곧 죽고 말았으니까. 또하나 용서는... 언니는 라일라를 이해하고 용서했지만 라일라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었는데 야곱 신부와 함께 지내면서 닫힌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고 그러다가 어느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자 언니의 얘기를 야곱 신부가 들려주었고 그 소식을 듣고 나서 자신을 용서했다. 영화는 딱 잘라 말하지 않았지만 보는 사람은 알 수 있는 것이지.

 

영화를 보고 나서 40분쯤 이야기나누기 시간을 가졌다. 가나다 순에 의해 나를 먼저 지명하는 바람에 얘기를 좀 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다음부터는 가능하면 말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7~8번 더 영화를 볼 기회가 있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겠지만 사람들과 친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좋은 영화를 보는 것 그것만이 내 목적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