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각 저생각
1.
어제까지 읽던 책을 다 읽고 아침 출근길에 무슨 책을 읽을까 하다가 '내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들고 나왔다. 내가 너댓번 읽은 책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사라져서 새로 사두었던 책이다. 아마 새로 사고는 처음 읽는 것 같다. 출근길 전철안에서 처음 읽는 책처럼 책의 겉표지부터 꼼꼼히 읽었다. 아, 이 책은 또 읽어도 내게 감동을 준다. 아마 열번을 읽어도 백번을 읽어도, 가망없는 얘기지만 읽고 또 읽어 이 책을 줄줄이 외운다 하더라도 그때마다 감동을 줄 것 같다.
경건, 겸손, 검소 이 세 단어를 늘 내 기도문에 달고 살아왔지만 이상일 뿐. 젊은 날들은 이것들에서 멀리 벗어나 헤매고 다닌 느낌인데 이제 내 나이를 자각하면서 다시금 이 세가지 단어를 생각하게 된다. '내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기막히게도 내가 늘 염두에 두었던 이 세 단어와 정확하게 부합한다. 또 한번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돌아보고 이 책이 전하는 감동에 푹 잠겨볼 참이다.
2.
넉달동안 정부가 운영한다는 구인구직 사이트에 내가 별이아빠 이력서를 접수해 준 것은 수십 번 그 이상이었다. 별이아빠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지금 경제상황이나 사회상황을 잘 알고 있는 터라 큰 기대도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쥐고 있던 희망의 가닥들을 하나 둘 놓아가고 있었다. 모든 기대를 내려놓고 '그래, 까이꺼 그냥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프리터로 살자' 하고 눈높이를 바닥까지 낮췄을 때 이력서를 낸 곳에서 연락이 왔다.
처음 하는 일 정도가 아니라 처음 보는 세상이다. 어쨌거나 우리가 제일 어려워하는 영업이나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는 일 아니니 멀고 힘이 좀 들더라도 견뎌보라고 했다. 본인도 그럴 생각일테고. 어느 직장이나 조직이나 다 팀웍이 중요하겠지만 내가 요즘들어 들여다보게 되는 하위 그룹에서 일하는 것은 더욱더 팀웍이 중요한 것 같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높은 거야 어느 그룹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그 스트레스가 유난히 심하고 그것이 이직으로 이어지는 것은 하위그룹일수록 많은 것 같은데 아마 괴로운 인간관계를 참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년이 60이라니 별이아빠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4~5년쯤. 평소의 바램은 나나 별이아빠나 60까지 열심히 일하고 그 이후로는 루즈하게 지내는 것인데 정말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둘 다 수입은 잘 나갈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졌지만 욕심만 버린다면 적은 수입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며 평안하게 살 수 있다.
별이아빠가 교육을 받고 곧 출근하게 되는 이 시점에서 내 바램은 직장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본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충분히 좋은 사람 역할을 해 줄 것이니 그저 유난히 독특한 사람만 별이아빠 주위에 없었으면 하는 바램.
3.
7월에 이미 배 예약을 끝내두었던 쭈꾸미낚시가 내일로 다가왔다. 낚시에 같이 가겠다고 의사표시를 할 때는 주말이 자유로웠는데 비용을 송금할 때 이미 내 주말은 없었다. 내가 한 말이 있으므로 까짓거 10만원, 낚시 소풍에 찬조했다 생각하면 된다고 맘먹었는데 석 달 가까이 지나 낚시 때가 가까워오니 하루쯤 쉬고 같이 가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가기로 마음 결정을 했다.
긴 시간 배를 타 본 적이 없어 살짝 걱정도 되고 조금 기대도 되고 그랬는데 막상 날짜가 코앞으로 닥치니 피곤할 게 걱정이다. 오늘은 초등 정기모임이고, 내일은 늦어도 새벽 2시에는 집에서 출발해야 하고, 잠 못자고 낚시하고 돌아와서는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요일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하니... 이 염려는 나이탓이기도 할 것이다. 피곤할 거 잘 모르던 지난날과는 이제 많이 달라졌다. 하하..
쭈꾸미 담아갈 아이스박스니 뭐니 준비물을 알려주긴 했는데 그냥 편안하게 소풍가듯 다녀올 참이다. 그래도 비닐봉다리 큰 거는 하나 가져갈까? 근데 오늘 정기모임은 어떻게 하나. 모임에 가면 잠잘 시간이 아예 없어질텐데 그렇다고 집에 일찍 들어간다고 자고 일어나서 낚시갈지도 모르겠고. 하여간 내일 즐겁게 다녀올 수 있음 좋겠다. 다같이 기분좋게...
4.
아침부터 가끔 아픈 부분이 뻐근하게 느껴진다. 영화관에서 그랬던 것처럼 못참게 아픈건 아닌데 뻐근하다. 건강검진에 아무 이상 없었고 한동안 괜찮았는데 도대체 뭔가 모르겠다.
5.
규현이랑 연락이 끊어진지 오래다. 지난 4월, 은숙언니가 세상을 떴을 때부터 연락이 안된다. 그 전에 언제 만났었나. 생각난 김에 뒤져보니 2011년 7월에 통화한 이후로는 기록이 없다. 그 이후에도 만났는데 기록을 안했을 수도 있고 통화만 했을 수도 있을텐데 기억은 안난다. 전화하면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된다고만 하고. 지금도 혹시나 전화했더니 똑같다. 그럴리도 없겠지만 내 전화를 차단했거나 번호를 없앴다면 전화가 그렇게 연결되지는 않을텐데 도대체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벌써 오래전부터 별이아빠나 P님은 어떻게든 연락을 해보라 하는데 난 본인에게 전화하는 것 외에는 하지 않는다. 얼마전에 내게 있던 규철이 번호로 문자를 보내 본 적이 있는데 대답이 없었던 걸로 봐서 규철이 번호도 오래되어 맞지 않는 것 같고. 집이나 마트로 전화를 해보는 방법 밖에는 없는데 그건.. 내키지 않는다.
은숙언니랑 통화하지 못했던 시기가 어떤 시기인지 알기 때문에 그럴까봐 걱정이고 본인도 전에 한 달씩 요양차 숲속에 박혀 있을 때는 연락이 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잠시 신경쓰이다가 또 잊어버리기도 하고 다시 생각나서 전화해보면 여전히 연결이 안되고 머, 그런 상태로 몇달을 지냈다. 전화번호가 살아 있는 것으로 봐서는 별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상황은 나쁜 것 같다. 별이아빠한테라도 알아보라 해야 하나. 다음에 멀쩡하게 만나게 되면 반쯤 죽여놔야지. 나쁜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