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꾸미 낚시
새벽 1시 20분쯤, 아파트 앞으로 픽업하러 온 혜#이 차를 타고 평촌으로, 평촌에서 로#님 차에 합류해서 보령으로 갔다. 운전하는 #마님에게 미안해서 안자려고 노력했지만 나는 때때로 졸고 #숙이는 대놓고 잔 덕에 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하자 했던 것도 지키지 못하고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1시간 이른 시간인데도 우리 차가 제일 늦었다.
그 새벽에 아침을 먹는데, 넘어갈 것 같지 않던 밥이 잘도 넘어간다. 아침을 먹고 시간이 일러 따뜻한 차 안에서 한 잠 자려고 차에 열선켜고 앉았는데 움직이자고 한다. 온 어촌이 낚시꾼들로 가득차 있어서 미리 출발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이라며. 항구를 가득 채우고 있는 배들 중에 우리 배를 어렵게 찾고 보니 제일 작고 남루한 배였다. 작고 꼬질한 구명조끼를 입고 적당히 자리를 마련해 앉아 로#님의 낚시 채비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을 들었는데 막상 채비는 낚시 해본 친구들이 해줬다. 우리 배가 일찍 출발한 편이었지만 나중에 출발한 배들이 우리 옆을 슁슁 지나간다. 다른 배는 모터배, 우리배는 나룻배인듯한 느낌.. 전구도 켜지지 않고 buzzer 소리도 나지 않는, 귀곡산장형 낡은 배와 늘 술에 취해있는 듯 보이는, "내 배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어" 하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르는 선장 할아버지. -.-;;
여기 가서 조금 낚고 저리 옮겨 조금 낚고 이리 저리 돌아다니는 동안 부지기수로 시동 꺼지는 소리를 들으며 매캐한 불연소 기름냄새를 맡으며. 집에는 과연 잘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갈 땐 해양경찰청 소속 배를 타고 갈 것 같은데?? 심각한 얘기를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게 나누며 희희낙락 즐거웠다.
뉴스를 보고 예상했던 것처럼 쭈꾸미는 잘 잡혔다. 낚시할 줄 아는 친구들은 처음부터 술술 잘 잡았고 처음 해본 나조차도 시간이 좀 지나니 감이 잡혀 잘 잡았다. 한 번에 두마리씩도 잡고 두마리 올라오다가 한 마리 떨어지면 아쉬워 탄성도 질러가며 가끔씩 바다밑의 돌, 쓰잘데 없는 조개껍데기 덩어리까지 낚아 올렸다. 낚시하다가 목줄이 끊기면 새로 목줄을 달아야 하는데 흔들리는 배에서 쉽지 않을 것 같고 미끼 끝에 달린 날카로운 갈고리도 위험해서 가능한 줄을 끊지 않고 낚시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며 줄 끊길까봐 조심조심 낚시를 했다. 배가 서면 바로 줄을 드리우지 않고 조금 시간을 보내서 조류가 평온해지길 기다렸다가 낚시줄을 내리는 꼼수까지. 덕분에 줄 끊지 않고 내내 잘 했는데 마지막에 서로 등진 친구의 낚시줄과 얽혀서, 그것도 얽힌 줄을 잘 풀고 난 다음에 배 밑바닥에서 끊겼다. ㅠㅠ 밑바닥에서 끊겼기 때문에 남은 낚시줄이 없어서 목줄도 많고 미끼도 많았지만 더이상 낚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데 얼마 안있어서 뭍으로 나왔기 때문에 그런대로 선방한 셈이다.
한참 낚시하는 중에 선장할아버지가 쭈꾸미를 통째로 잔뜩 넣어서 라면을 끓여줬는데 어찌나 맛이 있는지 시커면 라면국물까지 다 먹었다. 그리고 또 낚시하다가 꼼꼼한 로#님이 쭈꾸미볶음도 해줬다. 잡은 쭈꾸미를 집에서부터 챙겨온 도마에 올려놓고 자르고 발라내고 씻어서 준비해온 야채랑 양념, 기름, 김가루에 참기름까지 넣어서 일차 쭈꾸미볶음을 해주고 거기에 밥을 넣고 볶아서 나눠 주었다. 싱싱한 쭈꾸미를 잡은 자리에서 볶아 먹으니 맛도 맛이지만 기분이 더 좋았다.
예정에는 3시까지였지만 1시가 좀 넘으니 선장할아버지가 낚시를 더 하겠느냐, 그냥 뭍으로 나가겠느냐 물으신다. 기름이 얼마 없다면서. ㅋㅋㅋ 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지. 염려했던 것처럼 해양경찰청의 도움을 받지는 않고 뭍으로 잘 나왔고 일찍 나온 편이라 움직이기에도 수월했다. 지나치는 사람들끼리 "바다에서 나올 때는 아쉽고 나오고 나면 잘했고~" 라고 하던데 정말 그랬다. 조금 아쉬웠을 때 나오길 잘했다.
배빌린 낚시집에서 쭈꾸미 잡은 것을 서로 나누고 선장할아버지가 사준 키조개도 나눴다. 타고 온 차로 각각 돌아가기로 했다. 뒤풀이도 없고 밥먹는 것도 없고 그저 하드 하나씩 나눠먹고 출발.
돌아오며 생각해보니 한 때는 이 모임도 술 많이 먹고 뒤풀이도 길고 그랬었는데 참 많이 달라졌구나 싶다. 일곱명이 가서 맥주 6캔과 소주 반병쯤 먹은 거 같다. 열심히 낚시만 하고 쿨하게 헤어져 돌아가는 쿨한 모임. ㅋ 아마 우리 모두 세월이 흘러, 나이가 먹어 체력이 전같지 않은 탓일게다. 잠못자고 내려와 낚시를 했으니 피곤하고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인거지.
오는 길에 홍성휴게소에서 #숙이와 나는 달달한 커피, #마님은 아메리카노 한 잔씩 마시고 평촌 로#님 아파트 주차장까지 쉬지 않고 왔다. 돌아오는 길은 졸음을 참을 수 없어 둘 다 뒤에 앉아 잤는데 어찌나 세심한지 처음 출발할 때 켜놓았던 음악을 끄고 달리다가 평촌이 가까워지니까 다시 음악을 켠다. 잠든 우리를 위한 배려, 그리고 깨어나야 할 시간을 알려주는 배려. ^^
평촌에서 차를 바꿔타고 돌아오면서 #숙이가 "참 점잖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마 그동안은 한 두번 얼굴만 보고 겪어보지는 못했다가 종일 함께 움직이면서 느낀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연락하거나 자주 만나는 친구는 아니지만 그래도 15년 가까이 이어온 인연이라 심정적으로 가깝고 도움도 여러번 받은 고마운 친구이다.
외곽에서 빠져나와 우리집으로 오는 길이 많이 막혀서 혜#이한테 미안했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남에게 신세지는 게 참 힘들고 불편하다. 내힘으로만 살 수도 없으면서, 그리고 기꺼이 베풀어준다는데도 마음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
집에오자마자 샤워하고 샤워하는 동안 별이아빠가 키조개를 손질해놨길래 레시피도 없이, 본 바도 들은바도 없이 키조개 버터볶음을 만들어서 셋이 저녁을 먹고 설겆이만 겨우 끝내고 자러 들어갔다. 시간이 대충 9시 정도 였을 것 같은데. 한잠 자고 밤에 일어날 줄 알았더니 아침까지 내쳐 잤다. 피곤하긴 피곤했지.
나중에 별이아빠에게 듣기로는 쭈꾸미가 30여 마리는 되고 갑오징어가 한 마리 있었다고 한다. 내가 잡은 게 30마리가 좀 넘을까 싶은데 내가 잡은 건 다 가지고 온 셈이 되버렸다. 릴을 감은 팔이 너무 아픈데 잘 잡혀서겠지만 낚시는 재미있었다.
이번 낚시 여행을 통해 절절하게 느낀 것은 노는 것도 젊어서 놀아야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