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제도
살아오면서 최저임금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가끔씩 (일년에 한 번 정도일 것이다) 최저임금 협상이 잘 안되고 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그깟 몇 백원 더주고 덜주는 걸 왜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그저 최저임금이라는 것은 관공서에 내걸리는 현수막처럼 상징적인 것일뿐 실제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가끔씩 뉴스에서 아파트 경비아저씨들의 임금이나 미성년자의 아르바이트 문제에 대해 나올 때 최저임금과 상관이 있는 사람들도 있기는 있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
최근에 워크넷, 알바몬 등 구직사이트를 뒤지면서 아아, 나는 알게 되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최저임금제도와 관련이 있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지금 최저임금은 시간당 4,580원이고 주 40시간 근무할 경우 월급이 957,220원이라는데 구직사이트에 등록되어 있는 많은 구인광고들, 그러니까 특별한 학력과 경력, 실력을 요구하지 않는 대부분의 구인광고들은 최저임금이거나 최저임금에 가까운 금액을 지급한다고 제시한다. 월 150만원 이상을 제시하는 곳은 드물고 가끔 조건이 괜찮은 구인광고가 나오면 한 명을 뽑는 곳임에도 수십 명 이상의 지원자가 몰리는 걸 볼 수 있다. 구직사이트는 온라인으로 접수를 할 수 있어서 채용인원과 함께 지원인원도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같은 구인광고가 계속 올라오는 경우도 있으니 구직만 힘들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전체적으로 봐서 직장을 구하는 것이 쉽지가 않고 눈높이에 맞는 직장을 구하는 건 정말 불가능에 가까운 일 같다.
억대 연봉을 받는 친구들, 그렇지는 않더라도 직업이 안정적이거나 공무원인 친구들, 자기사업을 하면서 내 나이쯤 되니까 기반이 잡힌 친구들이 주위에 많다보니 내 상황이 나빠진 것이 내가 무능해서인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나만 나락으로 떨어진게 아닐까 마음이 힘들기도 했는데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 최저임금이 중요한 세계를 보게 되면서 위로를 받았다. 너무나 미안하게도..
얼마전에 읽었던 통하면 아프지 않다라는 책에서 누군가가 최저임금에 대해 얘기한 기억이 난다. 또 안#수의 생각이라는 책에서도 최저임금에 대한 얘기가 있었고 문#인씨가 최저임금을 50% 인상한다고 했다는 얘기를 본 적도 있다. 최저임금에 대한 얘기가 자꾸 나오는 건 그만큼 중요하기도 하고 문제가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찾아보니... 찬란한 역사와 눈부신 발전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최저임금 주소가 바로 저기에 있다. 세계최초, 세계최대, 세계제일이라는 말을 수식어로 붙이기 좋아하는 우리의 자화상. 어느 엄마가 뒤에서 세는 것이 빠를 이런 성적표를 보고 웃을 수 있을까. 더불어 2008년 현재 평균임금(최고임금이 아니고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이 32%로 최저임금제도가 있는 OECD회원국 21개 중에 17위라는 통계도 있다. 다같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방법은 평균임금대비 최저임금의 수준을 끌어올리기만 하면 된다는 간단한 결론이 나온다.
매일매일 돈이 부족해서 쩔쩔매는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돈이 생긴다면 무엇을 할까. 귀한 돈이 생겼으니 장롱속에 깊숙이 넣어둘까? 미래를 위해 은행에 저축할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동안 부족해서 쓰지 못했던 곳에 먼저 쓰게 될 것이다. 그것이 교육비일 수도 있고 식료품비일 수도 있고 의복비일 수도 있고. 서민들은 늘 '쓸 곳은 많고 돈은 없는 세상'을 살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 소비는 기업이 간절히 원하는 매출 신장으로 이어지는 것일테고. 내 생각에는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어 소비하는 품목이 한정되어 있는 부자보다는 사치품을 소비하지는 못하지만 다양한 품목을 소비하는 가난한 서민들이 기업을 살리는데는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가지지 못한 자보다는 가진 자들에게 더 중요할 것 같은 국가경제와 사회적 안정을 위해서 최저임금 수준이 우리나라의 위상에 걸맞게 속히 올라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제는 나도 그 덕을 보게 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