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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일기

곤욕의 거리

 

 

 

 

예배시간에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이 따가워서, 눈꺼풀이 무거워서. 나중에 설교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분명 졸았던 것인데도 그 순간은 졸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다 들리고 다 이해된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그러고 있다가 설교의 말미쯤에 함께 부르자는 찬송의 전주소리에 눈이 번쩍, 정신이 확 들었다. 함께 부르자는 찬송은 찬송과는 조금 다른 노래였다. 금관의 예수.

 

일년 반 이상을 등록도 하지 않고 다니는 이 교회는 내가 탐색해 본 교회 중에 제일 맘에 들었다. (이런 교만...) 재작년의 표어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웃사랑에 관한 것이었고 작년의 표어는 '이 땅에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교회' 였다. 올해, 2014년의 새 표어는 '통일을 준비하는 교회'이다. 처음 그 표어를 대하고는 적잖게 놀랐다.

 

뜻 모르고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던 국민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통일은 내 삶에 절실한 화두는 아니었으나 완전히 잊고 살았던 화두 또한 아니었다. 뱃속에 있는 아이가 아들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아이가 자라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자기는 군대가기 싫다고, 가지 않을 거라고 말할 때는 분단 상황이 원초적 고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통일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지만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변하다보니 통일에 따른 댓가가 두렵기도 했고 생각해볼 기회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는다고 닥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작년에 읽었던 몇 권의 미래동향과 '한국교회 미래지도' 때문에 통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다. 그것은 하자고 당장 되는 것도 아니나 오지 말라고 오지 않는 것도 아니며 독일의 경우처럼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닥칠 수도 있는 거다. 그렇다면 준비를 해야 한다는데 지금 그런 준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는 듣기 어렵다.

 

그랬는데 연초에 살금살금 다니는 교회의 표어에서 그걸 본 순간 얼마나 놀랐던지. 1월 한 달 동안은 '통일을 준비하는 교회'에 대해 설교를 한다고 했다. 첫 주의 설교는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였고 졸다 놓쳐버린 두번째 주의 설교는 주님께 좋은 일이라는 제목이었다. 첫 주 설교는 머리속에 선명하게 새겨졌는데 조느라 놓친 두번째 설교는 이따가 시간내서 홈피에서 찾아봐야겠다.

 

확실히 교회는 세대교체가 되고 있구나 하는 걸 이리저리 잠깐씩 다닌 교회들을 보고 느낀다. 살금살금 교회다니는 것이 내게 퇴보를 가져온다는 것을 요즘 많이 느낀다. 처음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자신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아니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으나, 생각... 살금살금 다니는 이 교회도 괜찮고 작은 동네 교회도 괜찮고. 솔직히 희생하지 않고 열매만 얻으려는 이 심뽀를 고쳐먹는다면 길은 많다. 그러니 내가 문제다.

 

 

얼어붙은 저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텅 빈 얼굴들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아 거리여 외로운 거리여
거절당한 손길들의 아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
죽음 저 편 푸른 숲에 아 거기에 있을까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여기에 우리와 함께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졸다가 정신번쩍 들어 부른 노래. 언제 들어도, 언제 불러도 울컥하는, 가슴을 뒤흔드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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