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인시공
정수복 지음 / 문학동네
강북정보문화도서관 / 교보도서관앱
책을 좋아하고 파리에서 오래 살았던 지은이가 쓴 양서예찬.
지은이는 말했다. 시간을 잊게 하고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책, 지성을 단련시키고 세련된 감수성을 갖게 하는 책, 정신을 고양시키고 영혼을 맑게 하는 책, 한마디로 양서를 찬미하고 싶은 마음이야말로 이 책을 쓰게 한 원동력이다. 라고..
책은 종이책이라야 제맛이라거나 책을 모아들이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일반인 중에도 그러니 책과 가까운 전문인들은 더더욱 그렇다. 나 또한 한 때는 읽은 책을 모아두는 것으로, 점점 쌓여가는 책으로 뿌듯함을 느낀 적이 있었고. 그러나 책을 읽고 쓰거나 연구를 하는, 그래서 자료를 계속 찾아봐야 하는 전문 지식인이 아니라면 책을 사서 읽고 쌓아두는 것은 이 시대에는 맞지 않는 게 아닐까. 모아둔 책을 여러번 읽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쌓아놓을 곳 마련도 힘들고 나중에 그 책들을 기증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요즘은 대학도서관도 책이 넘쳐서 은퇴하는 교수들이 책 기증을 후배에게 한다는 얘기가 이 책에도 있다. 옛날, 책이 귀하고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 일일이 필사하던 시절이라면 몰라도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그 수많은 책, 숲을 희생시키면서 만들어내는 책... 좀더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읽는 것이 좋지 않을까.
꽤 오래전 피천득 님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작은 방, 작은 책상에 소장하는 책은 단 몇 권이라고. 그 글을 읽을 때는 이미 고인이 된 후였을텐데 그 글이 내게 충격이었다. 나도 그래야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 자꾸만 반복해서 읽을 책을 빼고는 다 처분해야지 하고 맘 먹다가 어느 기회에 모두 처분했다. 아름다운가게에 기증하고 오래된 책은 버리고. 그리고 나니 책장에 단촐하게 꽂혀 있는 책이 오히려 내 모든 욕심을 버린 것 같아 뿌듯했는데 요즘 다시 슬슬 쌓이고 있다. 내가 산 것도 있지만 최근에는 이북을 보느라 종이책은 별로 사지 않는데 의외로 선물로 들어오는 책이 많다. 선물받았으면서 안읽고 쌓아놓은 책도 적잖다. -.-;;
그러나, 지은이가 책에서 언급한, 파리에 살면서 책을 보관하기 위해 아파트를 따로 갖거나 교외에 주택을 따로 두는 것은 참 꿈같은 부러운 일이다. 파리에는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다는 말이지?
파리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장면 가운데 하나는 걸어가면서 책을 읽는 사람의 모습이다. 청소년들만이 아니라 성인들도 지하철에서 읽던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거리를 걸어가면서 책을 읽는다.
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절로 내 주변과 비교가 되었고 대학입시에 철학과목이 있는 프랑스의 저력, 문화적 자존심의 저력이 이런데서 나오겠구나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책에 관한 것보다는 지은이가 살았던, 그리고 상세하게 묘사하는 파리의 풍경이 더 마음에 깊이 남는다. 수많은 도서관, 집에서 10분, 15분이면 갈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도서관에 대한 묘사가 부럽다. 그리고 오전에는 글을 쓰고 오후에는 책을 읽고 저녁에는 산책을 하면서 지냈다는 지은이의 파리 생활이 너무나 부러웠다.
요즘 우연히 유럽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게 되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그랬다. 그러면서 든 생각...
내가 유럽에서 살아보고 싶은 것과 별이가 브라질에서 살고 싶은 것이 같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내 머리를 쳤다. 그렇다면 별이가 브라질에서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구나!! 나는 별로 간절하지 않지만 별이는 얼마나 간절한가. 내가 젊었더라면, 내가 별이의 나이라면 나도 간절하겠지.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시도해보겠지. 그 생각을 하고 나니 별이의 브라질 행을 어쩔 수 없이 보낼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밀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할 수 있을 때, 갈 수 있을 때, 젊을 때 하고 싶은 것 해보는 거고 가고 싶은 곳 가보는 것이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지은이가 상상하지 못할 엉뚱한 결론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