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에 두 번 열리는 한강걷기대회. 내가 가입한 걷기 동호회에서 주최하는데 50키로, 100킬로 두 종목이다. 몇 년 전엔가 50키로에 도전했는데 혼자 걷다가 길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35키로 쯤 걸은 지점에서 중도 포기,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 즈음에 기분 나쁜 일이 하나 있어서 그 일을 묵상(?)하느라 남하고 함께 걸을 생각도 하지 않고 한강변을 걷는 것이니 지도를 펼쳐보지도 않고 걷다가 수서 방향으로 걷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혼자 걷느라 거의 쉬지 않고 걸어서 좀 힘들었고 기분 나빴던 일 생각을 계속하게 되어 아마 정신적으로도 좋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대회는 할까말까 망설이다가 얼마 전 미국에 있는 은미가 포토맥강 50키로 걷기대회에 아들을 데리고 나가 완주한 걸 보고 그래, 또 한 번 도전해보자 하는 생각에 마음의 결정은 했는데 정작, 그 뒷날 일정이 있어서 완보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걷기 뒷날인 29일 일정이 22일 일정인 줄 알고 착각했기 때문에 대회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결정했던 것이고 그 일정이 29일 일정인 줄은 22일에야 알았다. 그렇다. 정신없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
친구랑 같이 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혜숙이와 같이 등록을 해 두었고 포천까지 가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다가 조금 이른 감이 있기는 했지만 바로 전철을 타고 뚝섬유원지역으로 갔다. 협찬사 아식스 옷도 한 장 받고 CP에서 도장받아야 하는 카드도 하나 받고 코스도도 하나 받고. 5시에 단체 사진을 찍고 출발~
코스는 뚝섬유원지를 출발해서 청계천을 거슬러 올라가 고산자교에서 턴을 해 내려와 한강에 다시 진입하기 전 살곶이 공원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한강변을 걸어 양화대교에서 도강, 한강변 남측을 걸어 잠수교에서 다시 북측으로 건너 뚝섬유원지에 도착하면 50키로이고 거기에서 팔당대교까지 걸어 내려가 팔당대교를 건너 한강변 남측을 걸어 다시 뚝섬유원지까지 오면 100키로라.
내 목표는 양화대교 도강이 26키로 지점이어서 거기로 정했는데 5시부터 10시 반까지만 걸어야 막차를 타고라도 집에 돌아올 수 있으므로 걸을 수 있는 시간은 5시간 반, 그 중에 저녁식사 시간을 30분으로 잡으면 5시간 뿐이다. 헬스클럽에서는 시속 6키로로 걷긴 하지만 그건 주변에 둘러 볼 것 없이 단 한시간 걸을 때 얘기이니 양화대교까지 갔다가 합정이나 당산으로 전철을 타러 가려면 꽤 속력을 내야만 가능한 상황이었다. 쉬는 시간,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 다 포함해서 시속 5.2킬로.
결과적으로 그 속도를 내지 못했다. 다른 이들에 비해 특별히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늦는 속도도 아닌, 보통 수준의 속도로 걸었는데 양화대교까지 채 못가고 원효대교를 지나서 한강변을 나와 거기서 버스를 타고 신용산역으로 가서 전철을 탔다. 승강장 안내를 보고 시간을 보니 당고개행 막차의 바로 전차인 것 같다. 11시 53분에 당고개역에 도착, 집에 가니 12시가 막 넘어가고 있었다.
전에 도전했던 대회는 2시인지 3시인지 출발해서 덥기도 하지만 글찮아도 까만 피부를 쌔까맣게 태웠었는데 5시에 출발하니 아무래도 햇빛도 덜 강하고 더위도 약해서 좋았다. 청계천을 거슬러 올라가면서부터는 벌써 저녁 먹을 생각만 머리속에 가득하고... 사이사이 혜숙이가 싸온 오이, 오렌지, 사과를 먹으면서 식사할 곳에 도착해보니 메뉴가 된장국과 밥, 김치, 오이김치, 김자반이었다. 딱, 살빼기 좋은 식단. ㅋ
맛있게 먹고 다시 출발한 시간이 8시쯤. 해가 지고 어두워지니 건물과 아파트,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고 한강에 불빛 그림자가 어린다. 바람은 때로는 훈풍이, 때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걷자니 땀은 나지만 그닥 덥지도 않은, 걷기에 좋았다. 저녁을 먹은 후부터는 1시간 걷고 5분 쉬고를 반복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프거나 피곤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촉박해서 내가 목적한 곳까지도 채 가지 못하고 중간에 나와서 아쉬움은 남았지만 기분좋은 걷기였다. 다섯시간 걷기 정도는 가끔씩 했던 일이라 더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 모양이다. 다음에는 50키로 코스를 완보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음 대회스케줄이 나랑 잘 맞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아무래도 아스팔트길은 장거리 걷기에는 몸에 무리를 줄테니 이왕이면 흙길을 오래 걸을 수 있으면 좋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