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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백살까지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

 

 

어차피 살거라면

백살까지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

 

    이근후

 

 

전자도서관에서 빌려읽고 간단 포스팅이라도 하려고 보니 책은 이미 자동반납이 되어 있다.

책을 읽고 출판사도 적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었다.

 

책 내용 중에 저자의 전작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제목이 익숙했다. 내가 읽었던 책 아닐까? 기억은 나지 않는다. 블로그 글 검색을 해보니 역시! 내가 읽고 포스팅해 두었던 책이다. 

아주 먼 옛날에...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tistory.com)

 

그래서 책 읽고 포스팅을 하는게 좋다. 생각의 흐름을 쓸 시간과 능력이 안될 때에라도 제목과 인상깊은 구절 한 두개라도 기록해놔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한동안 읽었던 책들, 나중에 기록이라도 해놔야지 표지는 찍어놨는데 꽤 여러권이 되다보니 새삼스럽게 하는 것도 부담이 된다. 내용도 기억이 안나고. 지나간 것은 할 수 없고 앞으로는 가능하면 해보도록 하자.

 

나는 예전에는 치매에 걸리더라도 시설에 입소하기보다 간병인과 함께 집에 머물기를 바랐다. 노인시설이 열악했을 때 얘기다. 그러나 나이들고 치매환자를 집에서 모시는 가정의 사례를 접할수록 요양원으로 가는 편이 낫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치매걸린 부모를 날마다 지켜봐야 하는 자녀들의 고통이 만만치 않고, 요즘은 요양원의 시설이나 인력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기 때문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요양원에 들르게 되면 내부시설과 프로그램을 꼼꼼히 살피게 되었다. 아직 치매는 다가오지 않은 현실이기에 앞서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나라고 해서 비켜갈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면 불안하다. 그런 불안을 현실의 대안을 미리 들여다봄으로써 달래는 것이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늙어 아프게 되었을 때 가족이 집에서 보살펴주면 좋겠다는 생각. 힘들더라도 간병인의 도움을 받으면서 집에서 끝까지 살다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감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

젊은 시절도 지금도 나는 내집이 제일 편하다. 누구나 그렇다지만 정도가 좀 심한 것이 친정집에서도 하룻밤 자는 법이 없고 여행을 동경하면서도 가지 않는다. 해가 질 무렵 내집에서 먼 곳에 있게 될 때의 그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불안감이란. 그런 이유로 늙어 시설에서 살아야 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러나... 매일 눈앞에서 환자와 보호자를 보면서 그것은 좋은 방법도 아니고 현실적이지도 않다는 걸 깨닫는다. 특히 치매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가족도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 된다면, 아니 그정도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내맘대로 기억하고 분별하고 생각할 수 없다면.

언젠가 나중에 요양원에서 일을 하면 어떨까 생각을 한다. 좋은 요양원을 만나 그곳에서 일하다가 그런 상황이 되면 그곳에서 사는거. 참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생각만으로도 슬프다.

집을 떠나는 건 싫지만 사랑하는 가족에게 짐이 되는 것은 더 싫어. 가능하면 오래살지 못하더라도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남은 수명과 건강을 흥정하여 교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식이 장성하면 자연히 집안의 리더를 도맡아야 한다. 오히려 자식이 미래세대의 주인으로서 집안을 어떻게 끌고 나가겠다는 의지와 방향이 없을 때 더 큰 문제가 생긴다.

부모는 제 한 몸 잘 건사하며 인생의 의미를 곱씹어야 하는 황금같은 노년기를 집안의 대소사를 해결하느라 소진한다. 반대로 자식은 매사 부모의 결정을 기다리며 눈치보느라 에너지를 쏟는다. 그러다보면 늙은 부모가 장성한 자식에게 일일이 간섭하려 들고, 자식은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해 의기소침해진다.

 

부모노릇의 최종 목표는 자식의 독립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멋지게 홀로서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아이가 수만번 넘어지며 걸음을 배우듯 자식들도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독립에 성공한다. 그러므로 자식이 제대로 서야 독립할 수 있다는 생각의 순서를 바꾸라. 부모가 먼저 자식에게서 떨어져나가야 자식은 비로소 제 앞가림을 시작한다.

 

어떻게 해야 자식이 독립을 하는걸까. 집을 얻어 나가도, 간섭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는데도 독립했으나 독립하지 못한 것 같은 상황. 시대가 그래서 그렇다고, 이 시대가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해서 그렇다고 스스로 위로하다가도 같은 상황에서 씩씩하게 독립하고 어렵지만 홀로 서는 젊은이들을 가끔씩 보게 되면 내가 뭘 잘못했을까 하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무슨 잘못을 했기에 자식으로 인한 염려로 황금같은 노년기를 유쾌하게 누리지 못하며 무엇을 제대로 못가르쳤기에 자식은 부모로부터 온전한 독립을 하지 못하는지.

그래도 이제는 자식한테 기대고 싶기도 하고 기대기도 한다. 이번에 차를 바꿀 때, 검색하다가 머리 아파서 별이한테 일임을 했다. 알아보고 결정되면 견적서만 가져오라고. 우리는 편하게 차를 바꿨고 별이는 수많은 차종 중에서 결정장애로 힘들었겠지만 처음으로 스스로 결정하고 거래를 해봤다. 이후 제 차를 살 때는 이번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고 그렇게 경험하며 하나하나 배워갈 것이다.

 

정신분석학자 에릭슨은 인간의 정신발달을 8단계로 구분하고 마지막 단계에서의 발달과제를 통합감으로 명명했다. 

통합이란 지난생의 긍정적인 측면만 아니라 부정적인 측면도 삶의 일부였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즉 실수와 잘못으로 인한 후회와 자책도 있지만, 그런대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인생이었다고 스스로 평가하는 자세다. 이런 경지에 오른 자만이 다가올 죽음을 덜 두려워하면서 절망감에 휩싸이지 않는다. 진정한 자유를 획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면 진지하게 참회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의식적인 수준에서의 잘못만 떠올릴 일이 아니다. 열심히 살아오면서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해로움을 준 일은 없는가, 나로 인해 한이 맺힌 사람은 없는가, 의도치 않더라도 죄를 감춘 일은 없는가 등을 차분하게 생각해보라. 마음깊이 간직한 후회와 부끄러움마저도 결국은 내 삶의 일부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자야말로 축복받은 노년을 보낼 수 있다.

 

요즘 배우는 과정 중 노년기의 특징에 대한 것이 나온다. 그중 하나가 '생에 대한 회고의 경향'이다.

나도 지난 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후회도 하고 자책도 하고 때로는 자책에 대해 변명도 하고 나름대로 잘 살아오지 않았나 스스로 위로하기도 하고. 

나도 노년기에 들어선 것일까. 에릭슨의 마지막 발달과제인 통합감을 향해 가고 있는 과정일까.

삶의 긍정적, 부정적인 모든 면을 받아들여 긍정하며, 행복하고 만족한 삶이었다고 스스로 평가함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고 죽음을 덜 두려워할 때가 언젠가는 오게 되겠지.

옛날 같으면 살만큼 산 세월이다. 기술의 발달로 수명은 길어졌으나 사실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된 것이다. 이제부터의 삶은 덤으로 주어진 시간. 언제든 가볍게 떠날 수 있게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비우고 집착도 버리고. 이것, 늘 잊지 말자.

 

모든 부모는 초보이고 의도치 않게 잘못을 저지른다. 이를 피할 길은 없다. 다만 다행스러운 점은 부모의 양육태도가 아이들의 인격을 형성하는 유일한 요인은 아니라는 점이다. 자녀들도 스스로 살아남으려는 힘을 지니고 있다. 잘 키운 부모들에겐 서운하게 들릴지 몰라도, 자녀들이 그 힘을 바탕으로 스스로 잘 커 나간 부분도 상당하다.

그러므로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면 나머지는 아이의 자생력을 믿으라. 자녀의 성장이 부모의 노력 여하에만 달렸다는 생각은 오만이다. 아이는 부모 말고도 세상과 만나며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 나갈 것이다. 그것이 그 아이의 고유한 힘이자 독특함이다. 그것까지 부모가 좌우할 수는 없다. 그러니 어느정도 부모 노릇을 열심히 했다면 나머지는 아이 몫으로 돌리라. 그래도 아이는 충분히 잘 살아간다.

 

내 아이에게는 나보다 더 아이를 사랑해주는 존재가 있다. 힘이 있다. 불꽃같은 눈으로. 그러므로 염려할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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