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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일기

내년을 기약해 - 2013.8.19

 

1.

 

 

 

 

해마다 미경이가 들어오면 보통 두어 번쯤 만나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세 번, 아니 미용실에서 만난 것까지 하면 네 번을 만났다. 아무래도 다른 친구들과 같이 만나니까 날짜를 정하게 되어 만나기가 더 수월했는지도 모른다. 둘이 만날 때는 서로 시간날 때 보면 되지 하다가 시간이 금방 흘러버리는데. 학교다닐 때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아예 몰랐던 친구들도 있지만 올해 몇 번 만난 것이 금방 친숙해진다. 어릴적 친구란 그런 것인가.

 

효숙이는 해외여행을 하고 약속 전날 밤에 도착했을테니 피곤해서 못나온다고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제일 먼저 나와서 점심까지 사고 미화는 제일 멀리서 긴 시간 걸려 광나루까지 왔다. 발이 쏙 들어가는 식당이 맘에 들었고 점심시간 중간에 들어갔더니 우리가 먹기 시작할 즈음에는 손님들이 다 가고 조용해져서 좋았다.

 

미화는 제가 좋아하는 스타벅스에서 럭셔리 잡지에 대해서, 명품에 대해서 얘기했다. 명품이 예술이라는 미화의 얘기는 아마 디자인과 색상을 말하는 듯했다. 명품은 미화가 말하듯 예술일 수도 있고 신기루, 사기일 수도 있지. 명품을 사들이는 것과 명화를 사들이는 것은 비슷한 이유. 명화를 살 수 없으니 명품이라도.. 하하.

커피를 마시면서 이어 나눈 이야기는 생.로.병.사. 사는 게 그렇지 뭐. 후손으로 넘어가려는 찰나에서 멈췄다. 무슨 얘기 끝에 나왔을까. 미화는 타이티에 가고 싶다고 했고 갑자기 일어나서 타이티 여인들의 춤을 추었다. 그 대목에서 우리는 얘기했다. 날씬한 건 아름다움이 아니라고. 통통한 아름다움. 푸근한 아름다움. 춤추는 미화는 타이티 여인 같았다.

 

슬슬 지루해질 무렵, 어쩌면 어느 누구는 지루했을지도 몰라, 스타벅스에서 나와 미경이와 내년을 기약하고 일일이 포옹을 나누고 미경이는 길 건너로 버스를 타러, 우리는 택시를 타고 압구정으로 향했다. 사무실에 들어가기도 안들어가기도 애매한...

 

 

 

2.

 

걷고 싶다는 미화 덕에, 마침 사무실에도 별 일이 없다고 하고, 청계천을 가기로 했다...만 한 정거장을 지나쳤다. 요즘 흔한 내 증상. 종로3가에서 내린 덕에 광화문으로 가기로 했다. 청계천의 발원지에서부터 걷는 것이야. 이러면서.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없지. 교보에 들렀다가 청계천을 걸었다. 햇살은 따갑고 더웠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이 해를 등지고 걷는 길이라는 것. 미화는 두번째 청계천 산책. 여전히 감탄사를 내지르며 앞장서는 나를 뒤따라왔다. 버들강아지도 꺾고 개망초(?)도 꺾고. 물에 발을 담그기도 하고.

 

스타벅스에서 얼마나 이야기를 많이 했던지 배가 슬슬 고파져서 걷다가 광장시장 녹두전을 먹기로 했다. 녹두전 1장에 막걸리 1병!! 시켜놓고 기다리는 사이에 미화는 꺾어온 들풀을 모자에 꽂고는 이쁘지 않냐고 동의를 구한다. 이쁘지. 그리고 아무나 그런 짓 못하지. ^^ 효숙이를 그냥 들여보낸게 아쉽다는 얘기를 했다. 효숙이가 청계천을 같이 걸을까? 그럴 수 있음 좋았을텐데.. 가끔은 예정에 없는 스케줄로 채워가는 법. 압구정역 이후의 여정은 즉흥적인 여정이었으니..

 

 

 

 

간단히, 잠깐 먹고 다시 걷는다. 혜화동으로. 혜화동을 걸으면서 미화는 누군가를 우연히 만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여러번 한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아는 사람을, 그것도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뭔가 아쉬움이 남는 것 같아서 혜화동 초입에 있는 맥주가게에서 딱 한 잔. 나도 흑맥주 좋아하는데 미화도 흑맥주가 좋댄다. 기네스 한 병, 나는 크롬바커 필즈 한 병, 새우깡 한 봉지. 아, 나는 이런 맥주집이 좋다. 안주가 배부르지 않은 맥주집. 안주를 안시켜도 되는 맥주집. 330씨씨, 머그컵 한잔짜리 맥주 한 병씩 시원하게 마시고 기분좋게 일어났다.

 

9월, 고갱전이 끝나기 전에 시립미술관으로 고갱전을 보러 가기로 하고 빠잇~!

 

아름다운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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