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람이 내게 준 아트페어 VIP 카드.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했다.
코엑스에서 10월 2일부터 7일까지 열리는 국제 예술 장터(Korea International Art Fare)라는데 전시되는 작품수가 많고 분야도 다양하다고 한다. 다른 분야보다 미술전은 내가 평소에 잘 가지 않는 분야인데 잘됐다 싶었다. VIP의 혜택을 보니 BMW 차량 정비(내 BMW는 정비해줄 수 없겠지만), VIP 라운지 이용, 도록 증정 등이 있고 무엇보다 기간내내 1인 동반해서 애니패스할 수 있다는..
10월 3일 공휴일에는 혜숙이와 2시간 반 가량을 돌아보았는데 너무 좋아서 다음날 또 별이아빠와 같이 갔다. 퇴근하고 코엑스까지 가서 입장하려니 7시가 다 되어가고 관람시간은 8시까지니 볼 수 있는 시간은 한 시간 남짓. 마음은 급하고 전시장은 넓고. 빨리 둘러보자니 아쉬운 마음만 가득했다. 주말에 갈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럴 상황이 못되었고 오늘이 마지막날. 아깝지만 두 번 본 걸로 끝이다.
미술하면 무조건 평면에 물감으로 그리는 것만 생각했는데 그것은 일부일 뿐이고 다양한 재료, 다양한 기법이 많았다. 조형물도 있고 아트비디오 부분도 있고 처음 보는 것 같은 작품이 많아서 새로운 경험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받아온 도록을 펼쳐보고 인터넷에 접속해서 홈피에 올려진 전시물을 본 것과 실제 현장에서 내 눈으로 본 것은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미술전도 기회를 만들어 다녀봐야겠다.
특히 내 눈에 들었던 것은 사라져가는 도시의 골목길 풍경, 기와가 잇대어져 있는 풍경을 한지로 구성하고 그 위에 색을 입힌 작품이었다. 까만 기와, 밀집한 주택들에서 노르스름한 빛이 새어나오는... 작가와 갤러리를 기억해놨어야 하는데 그럴 줄도 몰라서 작품만 마음에 남아 있다. 크고 작은 작품이 여럿 있는데 그중 작은 - 그러나 내 집에는 작지 않은 - 작품 하나 우리 집에 걸어놓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 정말 갖고 싶은 그림들은 많았으나... 대부분 가격표시가 없지만 있는 것도 있었는데 컥! 할만한 금액. 일반인을 위한 소품 쯤으로 이해할만한 그림들의 가격도 99만원. 나로서는 가서 보는 방법밖에는 없는 듯하다. 누군가는 저런 그림을 투자 대상으로 여기로 누군가는 저런 그림을 선물(뇌물)로 받는다는 말이지..
한 두 시간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림도 있었지만(순전히 내 생각) 정말 저 그림을 완성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싶은 작품들이 참 많았다. 작품값이 수천만원 하는 것도 그닥 비싼 건 아닌 거 같애, 싶은... 큰 그림을 그리는 건 단순한 물감만으로 그린다 해도 완전히 노가다가 아닐까.
얼마전에 병이가 미술하는 사람과 음악하는 사람중에 누가 더 예민할까를 물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음악하는 사람이 더 예민할 거라고 했다. 음은 찰라에 틀리고 틀리면 망하는 것이지만 미술은 선 하나 잘못 그어도 그걸로 슥슥~ 다시 연결할 수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음악하는 거에도 노가다가 있을까? 미술하는 건 확실히 노가다가 있다. 예술적, 감각적 노동 외에도 신체적 노동이 많이 들어간다는 걸 전시회를 보고서 알았다.
나는 유아기, 초등학교 시절에 무언가 만들고 싶어서 괴로웠다. 입체적인 어떤 것을 만들고 싶은데 재료도 도구도 없고 방법도 몰라서 답답했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난 가위질도, 칼질도 제대로 못할 때. 부모님을 졸라도 바쁜 부모님은 나와 같이 뭔가를 만들 생각조차 못했다. 그후로 오랜동안 잊고 있었던 거 같은데 얼마전부터 다시 뭔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나는 손으로 하는 것에 익숙치 않고 자신이 없으니 방법은 별이 아빠를 통해 대리만족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마침 별이아빠는 손으로 고치는 거, 만드는 거를 잘 하고 좋아한다. 몇년 전부터 DIY 가구만들기를 해보라 했고 본인도 그러고 싶다고 했는데 상황이 안되어서 못배웠다. 내 속셈은 잘 되면 가구에서 한옥 만들기까지 가르치고 싶었댔다.
별이아빠한테 아트페어에 가자고 했던 건, 첫날 손으로 만든 작품들을 보고서 별이아빠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였는데 막상 같이 가서는 어디서 봤는지 못찾았다. -.-;; 혜숙이랑 갔을 땐 혜숙이의 방향감각에 의지해서 다녔는데 그때 보았던 그 작품을 다시 찾기가 힘들었다. 별이아빠 보여주고 싶은 건 결국 못찾고 내 맘에 따뜻했던 도시의 골목풍경만 겨우겨우, 거의 끝에 찾아내서 봤으니. 별이아빠도 모처럼 좋은 기회였다고 좋았다고 했다. 대부분의 남자들처럼 별이아빠도 문화생활과는 담을 쌓고 사는지라. 딱히 내가 보여주고 싶은 건 보여주지 못하고 휘리릭 훑으며 바쁘게 봤지만 감동은 마음속에 남아 있겠지.
작품 사진은 찍지 않는 거라는 기본을 아는 덕에 작품 옆에서 사진 한 장을 못 찍었다. (남들은 다 찍던데.) 그리고 어차피 도록, 홈피에 다 나와 있구만. 이 내 답답한 융통성이여...
두 세시간을 봐도, 한시간 남짓을 봐도 목마른 건 마찬가지. VIP 라운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커피빈 커피와 탄산음료가 마른 목을 축여주었다. 나와보니 전시장 안에서는 돈받고 팔고 있더만. 수지맞은 느낌.. ^^
해람, 혹시 보고 있나?
덕분에 잘 다녀왔어, 고마워~
내년에 또 부탁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