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조조로 보다
호불호가 갈린다는 명량을 봤다.
내가 보고 싶었던 영화는 따로 있었으나 별이아빠와 함께 보기로 해서 별이아빠 취향대로 한국영화 중에서 골랐다. 여름 특수기에 한국영화가 네 편이나 걸려 있고 바다로 간 영화가 많다. 명량, 해적, 해무.. 그중 해무를 볼까 하다가 쉽게, 부당없이 볼 요량으로 명량을 골랐다.
천만이 지난 시점이라 이미 볼 사람은 다 봤을테고 영화관에 가보니 노인들이 친구들과 함께 와서 보는 경우, 공휴일이라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가족들이 온 경우가 많았다. 상영관은 가장 큰 홀이었는데 사람은 가득찼고 시끄러움과 핸드폰 조명, 심지어 상영중에 통화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물 이외에는 반입이 되지도 않고 영화관 내에서 팝콘이나 커피따위 팔지도 않는 가끔 가는 예술영화관과는 완전 다른 분위기. 기대가 큰 영화는 초장에 봐줘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
두려움
영화를 보면서 내가 고민하는 것을 만났다. 옴짝달싹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요즘 나를 힘들게 한다. 영화속에서 수군, 민중의 두려움은 이유가 있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 두려움을 없애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마치 나처럼. 그러나 그 두려움에 대한 이순신의 처방은 임전무퇴 정신으로 배수의 진을 치는 것이었다. 두려움에 떠는 부하들을 모아놓고 진지를 불살라버린다. 그리고 출정.
나도 돌아올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 떠나야 하는걸까. 돌아올 곳이 없다면 그곳에서 죽기를 각오할 수밖에 없겠지. 이순신이 말한 "必死則生必生則死" 이것이 내게 답인가.
두려움이 용기로 바뀐다면 그것은 열 배 백 배의 용기가 될 것이라고 이순신이 아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 증거가 영화 화면을 가득 채웠고 나는 공감했다. 내 두려움도 용기로 바뀐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영화처럼?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하고 백성이 있어야 나라도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도 있다는 말, 1,400만 관객동원을 가능하게 했던 이유가 이순신의 저 말, 저 의미에 있다고 보는데 거기에 더하여 내게는 두려움과 용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도 주었다.
감독의 전작 작품에 대한 표절 논란이나 이 영화에 대한 평가와 상관없이 내게는 생각할 기회가 되었고 좋은 영화였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진저...
별이아빠와 점심
영화도 내가 정하고 점심 메뉴도 내가 정하고. 남자들이 브런치 카페를 가보겠는가 싶어서 별이아빠와 광화문에 있는 브런치카페엘 갔다. 샐러드와 샌드위치, 주스를 시켰는데 먹는 것이 영 신통치 않다. 내가 좋아하는 샐러드는 맛만 보더니 그걸로 끝. 샌드위치만 한 개씩 먹었다. 샐러드는 그대로 포장, 밤에 별이가 야식으로 먹고. -.-
나는 새로운 것, 새로운 곳, 새로운 사람, 심지어 새로나온 과자, 술에도 관심이 있는데 별이아빠는 그렇지 않다. 그런 성향을 알면서 그런데를 갔으니 내 잘못이지. 가까운 남산에 가서 막걸리에 파전이나 먹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