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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연옥과 지옥


천국과 지옥이 아니다. 아직 내게 천국은 없다. 겨우 연옥 정도일 뿐.
지난 광복절은 기쁜 날이었다. 일곱번의 iv 중에 여섯번을 성공했고 한 번은 실패가 아닌 포기였다. 아무리 양 팔을 뒤집어보고 젖혀보고 이리보고 저리봐도 도저히 자리가 보이지 않는거라. 착한 환우는 발에 하라고 하지만 발이 얼마나 아픈지는 내가 해보지 않아서 모른다. 하도 아프다는 소리에 내 손등, 내 손목을 마루타로 삼았어도 차마 발등을 마루타로 삼지 못했었으니. 그래서 시도조차 하지 않고 깨끗하게 포기하고 선임에게 넘겼다. 뻔히 보이는 고통을 내 몸 아니라고 환우에게 줄 수는 없다.
그날 정도면 훌륭했다. 기분도 좋고 그런 날은 아무리 힘들어도 피곤하지 않다. 그런데...

어제와 오늘은 지옥이다. 어제는 두 번에 성공한 경우가 많았고 처음으로 채혈도 두번 했는데 우려했던대로 서툴렀다. ㅠ 혈관이 보이지 않는 환우, 잘 안될거라고 예견되는 환우에게 실패하는 경우는 환우도 그러려니 하고 나 스스로도 그럴 수 있다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데 혈관이 아주 좋은, 당연히 잘 할 거라고 예견되는 젊고 건강한 환우의 혈관을 한 번에 뚫지 못하는 경우는 아주 아주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언제쯤 확실한 감이 올까. 이제는 실패보다는 성공확률이 월등하게 높지만 아직도 성공할 때조차 내가 왜 성공하는지 잘 모르겠다. 소 뒷걸음질치다가 쥐 잡는 격인건지..

실패하고 원인을 분석하느라 곰곰 생각에 잠겨 있으면 마음 좋은 선임은 25년 경력의 자신도 때로 실패한다며 내 팔 아픈거 아니니 맘 놓고 자신감 있게 찌르라고 위로를 한다. 불편한 선임도 있지만 대체로 함께 일하는 동료인 선임들은 괜찮은 편이다. 이쪽 업계의 인간관계, 직장 분위기가 이 정도인 경우는 드물다. 그나마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인원은 부족하고 시설이나 상황은 좋지 못한 편이나 내가 배우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곳을 만나기는 힘들 것이다. 이제 이달 말로 수습기간이 끝나고 앞으로도 일년을 잘 버텨야 하는데 언제 그 일년이 갈 것이며 그 기간동안 얼마나 연옥과 지옥을 드나들어야 할까.

그래도 이 힘든 시기가 지나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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