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이 42키로로 줄어서 병원에서 식욕촉진제를 처방받아 먹고 45키로로 겨우 올려놨다는 언니는, 아마 병이 없었다면 지금 체중에도 만족했을지도 모른다.대부분의 여자들이 바랄만큼 날씬하니까. 그러나 언니는 병으로 인해 날씬하기 때문에 그것을 부끄러워했다. 언니는 마지막 사진이 맘에 든다고 했다. 다른 사진들은 마른 것이 드러나서 싫다고.
삼화고속을 타고 서울역 옆에 내린다고 해서 마중을 나갔다. 조금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공연장인 대학로 예술극장까지 한눈팔지 않고 바로 갔다. 시작 10분 전 도착. 지갑속에 늘 대학로 지도를 가지고 다니는 덕을 보았다.
언니가 준비한 꽃다발을 예술극장 로비에서 언니의 친구분이 된 연극배우에게 전해주고 공연장으로 들어갔는데 자리가 없는거라. 안내하는 분한테 한 자리라도 등받이가 있는 좌석이 있어야겠다고 했더니 반대쪽 두자리를 지목한다. 가보니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나중 도착할 친구들을 위해 자리를 맡아 놓은 거라. 그건 안될 일이지. 안될 일이기도 하고 언니 때문이기도 해서 우리는 당당하게 그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이 통로와 무대의 끝부분까지 둘러 앉았다.
1편과 2편을 보는 동안 언니는 졸았다고 했다. 나도 지루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뭘 전달하고 싶은걸까 생각하면서 집중해서 보기는 했다. 친구가 나오는 공연은 무대 장치도 있고 재미도 있어서 언니가 새로 사귄 친구를 자랑스러워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하하.. 친구가 출연한 3편까지만 보고 공연장을 나와 로비에서 아미노산 등, 체력보강제를 먹어주고 근처의 민들레 영토에 갔다.
언니에게 내가 언니가 먹을 음식을 조금 싸오라고 했더니 현미잡곡밥을 한주먹 싸가지고 와서 민들레영토에서 가장 몸에 덜 나쁠 것 같은 것으로 언니 식사를 시키고 언니가 먹고 싶어하는 것으로 내 식사를 시켜서 먹었다. 언니 덕에 나는 포식을 하고 말았다. -.-
병원에서 지금까지 무리 없이 살아내는 것을 신기하게 여긴다고 하면서 자신이 살기 위해서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을 하는지 병원에서는 전혀 짐작도 못할 거라고 한다. 언니의 하루 일과를 들으면서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는 한 순간 한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기 위해 투쟁중이었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인 것은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이지. 언니는 전에도 그렇게 말했다. 평생 가난하게 살다가 암에 걸리니까 돈을 만져보게 된다고... 그래도 그게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을까.. 노력조차 해 보지 못했을 터.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겠지.
깨끗하게 나아 정상인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근근히라도 오랜동안 생명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아마 언니가 전파하는 행복바이러스 덕분에 가끔씩이라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언니 주변에.. 내가 그렇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