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식탁
연극 / 대학로예술극장 3관 / 극단 뿌리
아버지역 한기중 / 여자역 박리디아 / 아들역 민준호
★★★★☆ / 트린
공연을 검색해보니 검정색 포스터. 검정색 정장을 차려 입은 세 사람의 무표정한 가족사진이 나온다. 왠지 엄숙할 것 같고 무거울 것 같은 선입견이 든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정통연극이라고 한다. 늘 보는 코믹류가 아니라 혹시 뭔가 심오한 걸 내게 깨닫게 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보기로 했다.
대학로 예술극장 3관은 그런대로 시설이 깨끗하고 괜찮다. 입장시간이 가까워 화장실에 줄을 서 있어야 했지만. 언젠가 이장네 사람들이랑 갔던 윤석화 소유의 정미소 소극장이 아닌가 싶은데 한 번 검색을 해봐야겠다.
무대에는 커다란 식탁만 덩그러니 하나 있고 세 사람의 배우들이 이야기를 한다. 서로 대화하기도 하고 마음속으로 말하기도 하고. 그 서로간의 대화, 혹은 내면의 말로 이야기는 전개되고 등장인물은 각자 상황을 파악하게 된다. 물론 객석에 있는 우리도 충분히 상황파악을하고.
연극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새로 결혼할 여자를 소개하는 장면이다. 회사 근처 커피전문점을 한다는 그 여자를 어디선가본 듯한 아들은 오래 전 우연히 아버지가 전철과 기차가 만나는 역 근처에서 여자를 바라보는 걸 목격하게 되고 그냥 집으로 돌아온 술취한 아버지의 지갑에서 몰래 카드를 꺼내어 그곳에 가서 아버지가 바라보던 그 여자를 샀던 것을 기억해 내고 여자는 자기를 바라보는 남자와 그 남자를 바라보는 남자를 기억한다. 아버지 또한 본인이 사용하지 않은 카드사용내역서 때문에 확인하러 그 여자에게 갔던 것, 그 카드를 사용한 인물이 아들이었음을 알아차렸던 것을 기억해낸다. 결국 세 사람은 모두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게 되지만 그 사실을 끝내 아무도 입밖으로 말하지 못하고 연극은 끝난다.
연극이 처음 시작될 때 숨죽이고 지켜보는 객석의 긴장감이 참 인상적이었고 대사 뿐아니라 배우의 손짓과 표정으로 더 많은 내면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첨부터 끝까지 변함없는 무대에서 오로지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객석을 몰입하게 만드는 연극.
예상처럼 많이 무겁지는 않았다. 웃음을 유발하지는 않아도 객석에서는 몇 번 웃음이 나왔다. 재미있었다고 할 수도 없고 감동받았다고 할 수도 없지만 인상깊은 괜찮은 연극이었다. 어쨌든 공연장을 나오면서 트린과 난 재미있었다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