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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단풍찾아 헤매다 돌아오니 단풍은 내 집 마당에...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서 지난 주에 점심 벙개가 있었는데 거기서 또 걷기 벙개 얘기가 나왔다. 이러나 저러나 토요일 집에서 다리 접고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닌 나는 모처럼 사람들과 함께 걷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2시에 시청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집에서 12시가 좀 지나서 출발, 돌아온 시간은 밤 11시쯤. 11시간짜리 외출, 게다가 걷기 벙개였으니 몸이 피곤하기도 했지만 지난 몇 주간 고운 단풍 보고 싶어 용문산으로, 북한산으로, 도봉산으로 주말마다 정신없이 나다녔는데 정작 늘 스치고 살아가는 서울 시내에서 한적한 길도 걷고 고운 단풍도 만난 좋은 시간이었다.

전날 밤 늦게 살짝 비를 뿌린 후라서인지 날이 투명해서 시야도 좋았고 아직 잘 알지 못해서 친해지지 않은 사람들과의 걸음이라 간섭받지 않으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관계도 좋았다.

일단 도서 대출 반납일이라 어쩔 수 없이 반납하러 가는 길은 시청을 향한 길이 아닌 중계도서관, 둘러가는 길이었다. 책을 반납하고 하계역에서 7호선, 6호선, 1호선을 타고 시청까지 가는 전철안은 날이 따뜻한 덕에 더웠다. 조금 늦게 아침을 먹고 나선 길이라 약속장소인 던킨도넛에 일찍 도착해서 혼자 도넛과 커피를 마시고 -.-

.섬.과 잠시만 부부가 도착해서 덕수궁 돌담길로 걷기 시작했다. 덕수궁 돌담길을 걷는 연인은 헤어진다는 말이 있어서는 아니었건만 안쪽으로 난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본 기억이 없다. 은행잎이 노랗게 도로를 뒤덮은 길을 따라 강북삼성병원 옆을 지나 걸으니 홍난파 생가가 나왔고 그곳을 들어가보고 나와서 걸은 길은 서울성곽길 아래쪽으로 둘러가는 길. 환기미술관, 부암동길, 창의문, 커피프린스에 나왔다는 카페, 백사실길, 세검정으로 나와 택시를 타고 이화여대로 가서 저녁을 먹고 이대안 모모하우스에서 .섬.이 예매한 영화를 보았다.

시내 걷기에 몇 번 따라간 적이 있어서 눈에 익은 길도 있고 처음 걷는 길도 있는데 나열한 저 곳이 내가 걸은 길 순서가 맞는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 결국 최근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는 홍난파의 집이 마주보이는 벤치에 앉아 친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중 나는 그 시절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고 그 시절에 태어나지 않은 게 참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지금도 내가 사는 시대를 제대로 통찰하지 못하고 그저 내 발밑이나, 눈앞에보이는 것에만 급급하게 살고 있는데 그 시절에 태어났다고 별다를 리 없고.. 나같은 사람은 결단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 묻혀갈 수 있는 시대를 살아야 하는건데..

 



걷다가 만난 독특한 집.

.섬.은 이 집이 궁금하다고 했는데 옆에 설명판이 있다. 최근에 설치한 모양이라고 한다.



인왕산길로 접어들었다. 서울성곽길을 따라 걸을 수도 있지만 일행중에 임신부가 있어서 쉬운 길을 택한 모양이다. 조금만 올라가도 서울 시내가 확 트인 시야에 들어오고 청와대, 경복궁도 보인다. 산을 오를 때는 오르느라 주변을 보기가 쉽지 않은데 이번처럼 둘레길을 걸으니 유유자적 둘러보며 모르는 곳은 설명 팻말을 보며 걸을 수 있어서 좋다.

산에 오를 때는 단풍나무가 머리 위에 있지만 길을 걸을 때는 저절로 눈길이 닿는 곳마다 봐달란 듯 늘어서 있다. 올해는 여러번 글에 썼듯 단풍이 예상처럼 곱지 않았다.

정말로 단풍이 고왔던 해는 언제던가, 별이가 중학교 2학년 가을, 내가 수락산과 불암산자락이 만나는 곳으로 이사했던 그 해였는데 그처럼 고운 단풍을 가을마다 기대하지만 늘 저으기 실망하게 된다.

올해도 그랬는데 기대하지 않고 걸었던 서울 시내의 한적한 길에서 그런대로 고운 단풍을 만났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고 하더니 걷는 사람들이 꽤 된다. 윤동주의 언덕을 지나 창의문을 지나 환기미술관에 들어가서 차도 한 잔 마시고 커피프린스 촬영했다는 카페에 가서 둘러보고 백사실계곡을 끝으로 세검정으로 나왔다. 바로 옆은 대로인데 그 안쪽에 그런 계곡이 숨어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

택시를 타고 이화여대로 가서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고 시간맞춰서.섬.이 예매한 영화를 보러 갔는데... ㅎㅎ .섬.의 안목을 아니까 무슨 영화인지 관심도 없이 그저 따라왔는데 이대안 모모하우스에서는 건축영화제 중이었던 것 같다. 건축영화제라 하니 건축사라는 친구 영식이가 떠올랐다. 얼굴도 못본 친구. 어쨌든 건축영화제 출품 작 중 각 1시간 짜리인 두 편의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다큐멘터리라. 하나는 한국작품, 한옥에 대한 것이었고 또 하나는 아마도 프랑스작품인 것 같았는데 대부분 관객이 건축학도인 것 같은 느낌.

영화를 보러 들어갔더니 먼저 영화가 끝나고 막간을 이용해 질의응답하는 듯한 시간이라 잠시 후에 다시 들어갔다는.. 몸도 피곤하고 드문드문 나레이션으로만 이어가는 한국 다큐멘터리는 봤는지 졸았는지 모르겠는데 두번째 다큐 때는 처음에는 졸았지만 나중에 재밌게 봤다.혼자 킥킥거리면서..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익숙하지 않은 길을 걷고 낯선 영화로 마무리를 한 익숙하지 않은 하루였는데 그런대로 잔잔하고 따뜻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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