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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모처럼 가족여행 - 1

여행 결정과준비

돌이켜보면 우리 셋이서만 같이 여행한 것은 한 손에 꼽을 수 있을만큼 흔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빠지거나(만리포) 별이아빠가 빠지거나(하회마을) 아니면 친족들과 함께 하거나 제일 많은 부분이 선배 오빠들 가족과 함께 우루루 몰려다니는 여행이 대부분이었고 교회 중고등부 수련회에 함께 간 횟수가 제일 많은 듯한데 셋이 같이 간 것보다 당사자인 별이만 빠진 경우가 더 많았다.

꽃지해수욕장, 경포대해수욕장...

그러고보니 돌아다니는 것보다 물에 들어가 노는 걸 더 좋아하는 별이 때문에 셋이 같이 간 곳은 모두 바다였던 듯.. 이제는 제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을 더 좋아할 나이의 별이와 이번에 함께 여행한 이유는 군입대를 앞두고 우리끼리(!!)만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런 이유로 내가 제안을 했고 아마도 효도차원에서 별이가 수락을 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5월 초, 여행일자를 21일로 잡아놓고 준비한 것은 장소를 정한 것, 검색해서 펜션을 예약해 놓은 것, 그리고 출발 며칠 전에 고속버스 표를 예매해 놓은 것 뿐이었다.

아, 대중교통으로 가야 하는 상황에 이것저것 챙겨들고 다니기 귀찮아 펜션에 알아보니 근처에 대형마트도 많고 사먹기도 좋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까지가 여행을 위해 준비한 것의 전부였다.

 

출발, 고생길

8시 40분 차를 타기 위해서 집에서 7시 20분쯤 출발했다. 예상 소요시간 3시간. 이 정도면 아침을 먹지 않았으니 살짝 배고플 때 도착해서 점심을 맛있게 먹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남부터미널에서부터 막히기 시작한 것이 도착할 시간이 지나도 수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심한 정체였다. 그냥, 주차장이라고 생각하면 딱 맞을... -.-

이른시간이라 에어컨을 켠 버스안이 약간 추웠다. 다들 겉옷을 꺼내어 입었지만 별이는 반바지를 입어서 다리가 추울까 걱정이 되었다. 축구하다가 다친 무릎 아래쪽이 온전해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흉터로 남을 것 같다. 달리 할 일도 없고 막히는 버스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잠자기.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창밖을 보니 야산에, 들판에 아카시아가 하얗게 피어 있다. 요즘 아카시아가 얼마나 피었을까 궁금했는데, 그 달콤한 향기를 맡아보고 싶었는데. 창문을 열 수 없는 고속버스에서 보이는아카시아 꽃은 향기없는 꽃, 하나의 그림.

 

버스안에서 만난 엄마와 꼬마 둘

잠을 좀 자고 난 후부터는 버스 안의 소음이 신경이 쓰인다. 나랑 별이가 앉은 바로 앞자리에 별이아빠가 창쪽으로 앉고  그 옆에는 젊은 엄마가, 통로 옆좌석으로 그 엄마의 아이들 둘이 앉았는데 아이들 나이는 대략 5살 7살 정도.. 버스가 떠나자마자 곧 유부초밥, 초밥 등 도시락을 꺼내어 아이들을 먹이더니 찐계란과 요구르트를 먹이고 -.- 조금 있다가는 참외를 깎아서 먹인다. 많이 먹이는 것도 놀라웠지만 아이들도 식성이 좋은지 그 많은 걸 잘 받아 먹는다.

그리고 힘을 얻어서 둘이 찌그럭 째그럭 싸우는 거다. 뭐, 아이들이니까. 고맘때 아이들은 그런거니까. 그러면 옆에서 엄마가 참견을 하고 조용히 하라고 잔소리를 하고... 아이들 앞에 앉은 아저씨가 도저히 못참겠는지 아이들에게 '조금만 조용히 해라' 하고 경고를 주니 그 엄마, 더 심하게 잔소리를 해댄다. 아이고~ 그러더니 큰아이가 몸이 안좋아 졌는지 그 엄마 "너는 차만 타면 체하니?" 하고 아이에게 짜증을 낸다. 내 보기에 엄마 잘못이구만. 차만 타면 체하는 아이를 그렇게 먹이는 건 뭐냐구~

머리에, 귀에 거슬려서 짜증게이지가 점점 상승하는데 별이아빠도 스트레스받아 죽는줄 알았다고 나중에 내게 얘기한다. 아이들이 찌그럭거리는 건 참을 만한데 오히려 그 입을 다물지 않고 잔소리를 해대는 젊은 엄마 때문에 미칠 뻔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안도했다. '아, 나는 저렇지는 않았었지.'

 

시끄러워서 정신없었던 여섯시간 반

우리 통로 옆쪽으로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 녀가 탔는데 좀 지나친 애정행각과 닭살스런 대화, 머, 거기까진 좋은데 키득키득, 히히덕거리는 소음으로 나를 고문하는데 뒷쪽에서도 수다와 웃음소리가 그치지를 않는다.

돌아보니 대부분이 친구끼리, 연인끼리 함께 탄 별이 또래로 보이는젊은 아이들. 아, 이제 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나이가 훠얼씬 넘어버렸구나, 거기에서 깨달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는 차가 없는데. 다음부터는 짚신 삼아 베낭에 매달고 도보여행이나 해야 하려나 보다. ㅠㅠ

유쾌한 젊음이 죄가 되겠나, 조용한 나라에서 살던 조용한 사람들이 조용한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 죄라면 죄겠지. 세시간이면 갈 목적지를 여섯시간 반 동안, 그것도 소음으로 고문당하면서 마음속에 참을인자를 삼십개 쯤 새긴 후 도착했다.

 

장보고 체크인부터

안면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휴가지라서 그런지 어지간히 큰 마트가 많이 있다. 마트는 대형마트는 아니고 동네에 있는, 아파트단지 안에 있는 좀 큰 마트만 했다. 연휴를 즐기러 온 인구로 마트안은 바글바글 서로 부딪혀서 괴로울 지경.

농협마트에 가서장 본 것이 목살, 상치와 깻잎, 김치 200그람 두 봉, 라면 두개, 물 한 병, 소주 2병, 산사춘 1병, 청견오렌지 1팩 5개, 믹스 커피 1박스, 홈런볼과 감자칩 커다란 봉지로 각 한개씩... 집에서 가져온 것은 쌀 조금, 깐마늘과 쌈장, 허브소금이 전부였다.

커다란 비닐봉투 하나에 담아들고 택시를 탔다. "여행스케치로 가요~"

여행스케치로 예약한 이유는 10여년 전에 꽃지해수욕장에 셋이 갔을 때 예쁜 펜션 앞에서 사진을 찍은 적이 있었다. 인터넷으로 이 펜션의 위치를 보았을 때 우리가 사진찍은 그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보게 되었고 또 하나는 이 펜션이 대중교통으로 여행하는 우리들이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쉽게 갈 수 있는, 여차할 경우 걸어서라도 다닐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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