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17 수 차차흐려져서 밤에 눈~
요즘 바쁘면 바쁜대로 한가하면 한가한대로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출퇴근 길에 읽는 잡지를 빼놓고 책을 손에 잡은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시작하지도 않은 책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내 마음을 부담스럽게 하는데도... 이 뭔지 모를 어수선한 마음은 곧 진정될 것이므로 그때까지 그냥 게으름을 피우리라 맘먹는다.
어제, 저녁부터 시작해서 밤새 많은 눈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다. 종일 할일이 없는데도 시간을 허송하면서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다가 조금 일찍 퇴근해서 명동을 나가봤다. 새로 한 머리가 너무 강한 것 같아서 모자를 쓰고 싶은데 마땅한 모자가 없어서 하나 사고 싶은 마음에.. 지나다니면서 보고 느낀 것처럼 노점상에는 예쁜 물건들이 많았는데 역시 사지는 못했다. 노점상에서 물건사는 것을 왜 못하는지 모르겠다. ㅠㅠ
좀 걸어볼까 하고 돌아서 을지로 지하보도를 걷는데 혜숙이의 연락이 왔다. 눈이 오니 시간되면 만나서 맥주나 한 잔 하자고. 화실로 갔더니 지난번에 스케치한 그림이 거의 완성단계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림 배워보고 싶지 않냐고 묻기에 "네가 지금 쓰고 있는 커다란 팔레트, 좋은 물감, 이젤까지 다 있는데 한가지 눈썰미-.-가 없어서 자신없다"고 했다. "별이놈이 초등 4, 5학년 때인가 별이놈 미술가르치고 싶어서 같이 화실에 다녔는데 뎃생 끝나고 수채화 시작하다가 별이놈이 안다니겠다고 해서 같이 그만두었다"고..ㅎㅎ 나이먹어서 뭔가 취미생활을 하려면 즐거움, 기쁨을 느껴야 하는게 아닐까.
벌써 한참 지난 일이지만 내가 그만큼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긴 했지만 그다지 즐겁게 느껴지지는 않았었다. 모르겠다. 첨부터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음악도 지금은 배우기에 부담이 있으니까. 무엇이든 한 가지 새로 시작한다는 건 끈기와 인내..가 필요한데 난 그런게 부족한 것 같다. 절실함이 없어서인지 몰라도.
같이 나와서 맥주 한 잔 하려고 대한극장 위에 괜찮다고 들은 로즈가든으로 갔는데 겨울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단다. 사람이 많을 거 같아서 일단 제낀 쭈꾸미집으로 향하면서 거기자리가 없으면 치킨이 맛있다는 그린호프로 가자고.. 다행이 금방 자리가 나서 쭈꾸미집에서 쭈꾸미와 소주 한 병, 볶음밥까지 시켜서 먹었다. 골고루 맛보려고 모듬을 시켰더니 양이 너무 많아. -.- 그래도 아줌마 정신 투철한 우리는 끝까지 다 먹어치웠다. 씩씩..
크리스찬이라는 것에 대한 기대,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기대... 그것이 혜숙이를 자유롭지 못하게, 힘들게 만든다고, 그래서 크리스찬이라는 얘기, 교사라는 얘기는 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해할 수 있지. 나는 그 중 하나로도 충분히 자유롭지 못하니까, 내 스스로. 그래도 뭐, 지금은 그 부분 많이 편안해지긴 했다. 자기합리화..라는 방법이 있으니.
원래 쭈꾸미집은 빨리 먹고 나오는 집인데 조금 늦게 갔더니 손님들이 빠져나가서우리가 자리를 옮길 필요까지는 없었다.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지하철 타러 같이 가면서 혜숙이 행복한 날이었다고 한다. 눈온다고 전화할 친구 있어서, 전화하니 바로 만나주는 친구 있어서, 그 친구가 저녁까지 사니 정말 행복한 날이라고. 예배시작 전, 앞에서 부지런히 시선을 돌리며 뭔가를 찾는 혜숙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음부터 손을 좀 들어서 표시를 해줄까? 바로 나를 보면 괜찮은데 그래도 못보면? 그게 참 뻘쭘할 거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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