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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도가니


도가니

망설이던 영화를 보고 왔다. 토요일 아침 8시 20분.

실제 일어난 일과 그 일을 토대로 쓴 소설과 그것을 영상으로 옮긴 영화와는 분명히 많이 다를 것이다. 누가 생각하더라도 수위가 많이 낮아졌으리라고 예상할 것이다. 영화는 요즘 온라인상을 분노의 도가니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처음 시작부터 영화는 음습하다. 아이가 기차에 치여죽고 노룬지 고라닌지가 무진 자애학원으로 부임하러 가는 선생의 차에 치여 죽는다. 그것은 이 영화의 분위기를 예고하는 신호이고 관객에게 미리 작은 충격을 줌으로써 앞으로 보게 될 커다란 충격을 완화하려는 장치가 아니었을까 싶다. 영화 내내 불편하고 답답한 것이 영화 초반에 죽은 아이의 형이 자신을 성폭행한, 그러나 집행유예로 풀려난 선생을 철길 위에서 칼로 찌르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끌어안아 열차에 함께 깔려 죽는, 마지막 부분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리고 관객을 위로하기 위함인지 영화는 1년 후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결 나아진 아이들의 생활하는 모습을.

자애학원에서 일어난 그 일은 이미 그 지역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을 것이다. 아무도 그것에 관심을 갖지 않았고 문제 삼지 않았을 뿐. 가난한 미술선생, 아내도 죽고 아픈 어린 딸을 가난한 엄마에게 맡긴 강선생도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못본체 지나칠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러고 싶다는 유혹도 있었겠지만 그 상황이 너무나 기막혀서 밖으로 알리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나 같으면 어땠을까? 그 일을 영화로조차 보고 싶어하지 않은 나라면..

자기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그것도 부모가 없거나 부모의 상황이 열악해서 저항하거나 문제삼지 못할 아이들만 골라서 못된 짓을 했다는 것이 교육자 이전에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인가싶다. 아니, 이 영화의 내용을 더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저 영화를 보고 나라면... 하고 가정을 해보고 나 자신을 반성할 뿐이다. 내가 강선생 입장이라면, 내가 강선생의 엄마 입장이라면.

영화나 온라인상에서 기독교가 얼마나 많은 조롱을 당하는지 모른다. 기독교인으로서 참담하지만 반박할 수 없음도 사실이다. 영화 속에 나오는 기독교인의 모습을 보면서 또한번 가슴이 답답해졌고 그것이 전혀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부끄럽다.

어쨌든 인간이기를 포기한 이들이 있고 어려운 상황에도 그것을 밖으로 알리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재판과정에서 더 큰 분노할 일을 보게 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이미 만고의 진리였다.

전관예우라는 것이 좀 유리하게 봐주는 것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영화를 보니 아예 100% 이기게 해주는 거라고 한다. 내가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원에서 판결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법원 밖에서, 고급 술집에서 이미 판결은 내려졌다. 고급두뇌, 최고의 지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영화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상황이 그런데 무슨 정의를 달아보는 곳이 법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그리고 보호자가 합의하면 모든 상황이 끝나버리는 법.

민수가 울부짖는 부분에서 마음이 아팠다. "내가 용서 안했는데 누가 용서했다고 그래요? 나랑 동생 앞에 와서 용서해달라고 빌지도 않았는데 누가요?" 전에 본 밀양이라는 영화도 이런 비슷한 상황이 있었지.

도가니가 만든 분노의 도가니 현상이 앞으로 어떻게 될까. 실화를 알고 글로 고발한 공지영 작가나, 군대에서 이 책을 읽고 영화화하기를 적극 추천한 배우 공유, 그리고 그 영화를 보고 분노하는 우리 모두의 힘이 세상을 조금씩 바꿀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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